소진과 장의
소진과 장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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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작가

‘말 잘하기는 소진장의로군.’ 흔히 구변이 좋은 사람을 일컬을 때 나오는 속담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커다란 장점이고 축복이다. 하지만 말은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다. 특히나 정치인에게 말이라는 것은 때론 상대편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을 베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소진과 장의는 언변이 좋은 사람의 대명사로 불리는 춘추전국시대 모사꾼이니 요샛말로 치자면 정치인이다.

중국 한나라 때 제자백가 중에 종횡가(縱橫家)라는 학파가 있었다. 종횡가를 대표하는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그 시대는 물론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지모와 언변이 뛰어난 사람으로 손꼽힌다.

소진은 처음에 진나라에 가서 자신의 지략을 왕에게 말했다. 하지만 왕은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고 6개 나라를 돌아다니며 연합해서 진나라를 대항하자고 제후들을 설득했다. 이른바 ‘합종’이다. 그래서 크게 성공했다. 그가 가진 무기는 오로지 세 치 혀뿐이었다. 

나중에는 주로 이간질로 합종을 깨트리는 장의의 ‘연횡’이 등장했고 동문수학했지만 라이벌인 두 사람은 각각 합종과 연횡으로 전국을 쥐락펴락했다.

소진이나 장의의 신념은 오직 돈과 권력으로 집중되었고 온갖 속임수와 교활함, 잔인함과 뻔뻔스러움으로 무장하고 권력을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삼았다. 남북으로 합종하거나 동서로 연횡하면서 그것이 정의이든 불의이든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대의명분이나 정의감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다음과 같은 소진의 일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소진이 6개 나라의 재상이 되어서 금의환향하자 백수건달이었을 때 박대를 하던 형수가 땅바닥에 꿇어앉아 절을 하며 환대를 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아지니까 친척들까지 날 두려워하는구나! 이러니 세상을 살면서 어찌 권세와 부귀를 멀리할 수 있겠는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그야말로 말로써 말 많을 때가 아닌가 한다. 요즘 돌아가는 시국을 보면 소진, 장의가 살았던 시대도 저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치인들은 저마다 말발을 자랑하며 권력을 향하여 질주한다. 이 시대의 소진, 장의들이다.

그들은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대중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할 뿐이다. 대중들은 불편한 진실은 잘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에는 여러 계층이 있으므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말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종종 말실수 등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말을 바꾸기, 뒤집어씌우기, 물타기, 말꼬리 잡기 등등의 신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러한 양상은 여당 야당이 따로 없다. 그럴듯한 언변으로 잘못을 상대편 탓으로 돌리며 도리어 공격을 하거나 본질은 숨기고 엉뚱한 트집을 잡아 국면을 180도 바꿔버리는 것을 보면 감탄할 지경이다. 신묘한 말의 예술(?)을 보는 듯하다.

대중은 그들의 말이 가지는 무게감이나 진실성을 떠나 일견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우선하게 되고 교묘한 말재주는 마법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든다. 

어느 시대든 소진, 장의와 같은 인물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분명 올바른 세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또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진정성이 결여된 모사꾼의 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말이 오래갈 수 없고 진실하지 않은 말이나 계획은 결국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이기 때문이다.

권력 주변의 일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기에 사람 사는 세상은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이나 비슷하지 싶다. 역사는 발전하는 게 아니라 돌고 돈다고 하는 말도 있던데 나름 설득력이 있다. 

옛날 소진, 장의가 말로써 권세를 얻고 부귀영화를 누렸듯 이 시대의 소진, 장의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세 치 혀로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소진과 장의도 종국에는 몰락했고 종횡가가 빛을 보았던 시기도 짧았다는 게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다소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진실을 진실이라 말하고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진짜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사람이 문득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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