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대박!’ 3·9 대선
‘헐, 대박!’ 3·9 대선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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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나 타서 박속은 끓여 먹고 바가지는 부잣집에 팔아 살아갑시다.” 

흥부 내외가 박을 한 통 따다 놓고 톱 빌려다가 박을 타면서 “시르렁 시르렁, 톱질이야, 어여… 몹쓸놈의 팔자로구나. 원수놈이 가난이로구나.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일대 영화부귀헌디 이 놈의 팔자는 박을 타서 먹고 사느냐~”

​흥부가(興夫歌)중에서 박타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박을 타다가 돈벼락을 맞았다. 쥐구멍에도 해뜰 날이 있다더니 찌들어 못살았던 흥부네 집에 하루아침에 큰 박(대박)이 터진 것이다.

오늘날도 그 흥부네 대박을 기다린다. 새해 인사도 “대박 나세요” 한다.

그래서 대박을 걸고 이름을 짓는다. ‘대박집’ ‘대박주’ ‘대박가족’ ‘대박예감’ ‘대박낚시’ ‘대박식당’ ‘대박나라’ ‘대박타임’ ‘대박인생‘ ‘대박성공’ ‘대박인기’ 등 말하기가 힘들 정도로 대박에 감싸여 있고, 대박에 젖어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세상이 대박인지 대박이 세상인지 모를 정도다.

그 이면에는 ‘더 이상 희망이 안 보인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도 담겨 있다. 

대학을 나왔는데 취업이 안 되고,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봐야 내 집을 장만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래가 캄캄한 ‘헬조선’에서 벗어나려면 단번에 ‘대박’을 터뜨려야 한다”고 말한다. 

대장동 ‘화천대유’ 사건이 나자 단군이래 가장 큰 박이 터졌다고 전국이 난리가 난 것은 그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불만이 새로운 감탄사 대박을 빚게 하는가? 기뻐도 대박, 슬퍼도 대박, 화가 나도 대박…. 세상사 모든 게 다 ‘대박!’이라고 한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을 듣고도 ‘대박!’,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부인의 통화 내용 녹취록을 듣고도 ‘대박!’이라고 한다.

그냥 ‘대박!, 대박이다!’라고 탄성을 지른다.

▲이 ‘대박!’이라는 탄성은 대주주와 동업자들이 여야(與野)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등 기득권층끼리 해먹은 대장동 ‘대~박!’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것과는 분명 다른 감탄사다.

이 새로운 감탄사가 우리말의 다른 감탄사들을 빠르게 다 잡아먹고 대체하고 있다.

즐거운 환희의 느낌을 나타내던 ‘우와!’는 현저히 세력이 약화됐다. 새로이 접하는 경이감을 나타내던 ‘세상에!’는 그저 5060들이나 쓰는 말이 됐다.

과거 여성들이 애교스럽게 애용하던 감탄사 ‘어머나!’ ‘어머머!’ ‘엄마야!’ 등도 마찬가지다.

요즘 이런 감탄사를 하면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누군가 다치는 교통사고에도 대박~, 피 흘리는 싸움에도 대박~. 감탄사 대부분이 ‘대박’에게 점령당했다. 

신명을 드러내던 감탄사 ‘앗싸!’도 맥을 못 춘다. 우리 여섯 살 손자도 ‘와’ 하지 않고 ‘대~박’이라고 한다.

‘대박’의 위력을 실감한다. 이전의 모든 감탄사를 통일한 ‘대박’의 시대다.

▲대박의 꿈이 횡행하는 것은 성장이 멈춘 사회의 특징이다.

정치적 성장이 뒤로 가고 있는 3·9 대선도 ‘멈춘 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로 만원이고 입 달린 사람은 다 말을 한다.

그 가운데는 대박 씨를 얻고자 자기집 처마에 들어온 애꿎은 제비의 성한 다리를 꺾는 사람들도 있다.

남이 다 먹기 전에 톱 빌려다가 큰 박을 ‘시르렁 시르렁’ 탈 준비를 하고있다.

대박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흥부가 대박을 거두었는지를 알지 못하고 대박을 꿈꾸면 그것은 허망이고, 허상이다. 

유권자들은 벌써부터 ‘헐~ 대박’이다. 

어느 게 흥부 박이고 놀부 박인지를 분명히 안다.

패가망신(敗家亡身) 3·9 ‘쪽박’을 쓸 사람들이 그려지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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