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敵)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적(敵)그리스도는 누구인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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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시인·작가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에서 자동차를 몰아대는 미치광이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도 나의 할 일이지만, 내 모든 힘을 다해 운전 그 자체를 멈추게 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1940년 여름 지하 저항세력의 히틀러 암살계획에 적극 가담했다.

그는 히틀러를 적그리스도(敵, Antichrist)로 보았고,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서에서는 적그리스도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불법한 자’, ‘벨리알’, ‘거짓말하는 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 ‘작은 뿔’, ‘왕’ 등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4·3 당시 활동했던 문상길 중위와 채명신 소위. 두 사람은 같은 기독교인이었지만, 문상길은 양민 탄압을 막기 위해 상관 암살에 나선 반면 채명신은 소위 나라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진압 작전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부대 직속상관으로 만났지만, 한 사람은 사형수가 되어 잊힌 인물이 되었고, 다른 이는 전쟁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새로 부임한 박진경 중령은 반공 사상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는 “폭동을 모두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한 달 사이 수천 명을 포로로 삼고, 그 공을 인정받아 대령으로 특진했다.

불의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은 신앙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다. 문상길은 결국 부하들과 ‘일’을 저질렀다. 1949년 6월 18일 새벽, 대령 진급 기념식을 마치고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박진경을 암살했다. 직접 총을 쏜 사람은 문상길의 부하 손선호 하사였다. 이들의 행동은 군 당국으로 들어온 투서로 꼬리가 붙잡혔다.

암살 사건에 연루된 문상길 등 9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문상길은 재판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와 박진경 연대장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저 세상 하나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하여도 하나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재판장은 장차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을 하여 주기를 부탁한다.”

채명신은 문상길 직속 부하였지만, 암살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박진경을 높이 평가하며 토벌대 소대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박진경 대령이) 양민을 학살한 게 아니라 죽음에서 구출하려고 했다. 4·3 사건 초기, 경찰이 처리를 잘못해 많은 주민이 입산했다. 그런데 박 대령은 폭도들의 토벌보다는 입산한 주민들이 하산하는 데 작전의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채명신은 문상길을 “좌익 사상에 물들어 김달삼 지령에 따라 연대장을 암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진경은 뛰어난 토벌 작전을 펼친 우수한 군인으로 치켜세우고, 무장대 진압에 앞장선 서북청년단원들도 용맹스럽다며 높이 평가했다. 군경과 우익 단체들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수많은 마을을 불태웠으며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채명신은 보고서 내용을 믿지 않았다.

최근 몇몇 우익 인사와 함께 4·3특별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소송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하기도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였던 채명신은 여러 교회에 간증 집회를 다니며 많은 사람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우리는 서로 다른 두 군인의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본회퍼는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 직전 나치의 손에 처형당했다. 베를린대학교 신학 교수였던 그는 체포되어 1945년 4월 9일 아침에 교수형을 당했다. 그때 그의 나이 39세였다. 그리고 그 1주일 후 히틀러가 자살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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