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우가 오다니고 제주해녀 물질하던 섬
테우가 오다니고 제주해녀 물질하던 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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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가장 가깝게 보이는 섬 麗瑞島(여서도) ⑵
청산도 곰바위에서 바라본 여서도(왼쪽) 너머로 제주도(오른쪽)가 아스라하게 구름속에 솟아 있다.
청산도 곰바위에서 바라본 여서도(왼쪽) 너머로 제주도(오른쪽)가 아스라하게 구름속에 솟아 있다.

■ 48가구 80여 명 산다지만…

‘내일 아침 떠나는 배를 타지 않으면 혹시 며칠을 기다려야 할지 몰라요. 구경 왔으면 얼른 보고 이 배 타고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요.’ 한 주민이 낚시왔느냐 관광왔느냐고 물으면서 ‘구경 왔으면 여기는 별로 볼 곳이 많지 않으니 얼른 보고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 귀띔해 준다.

‘요즘 날씨가 그렇게 좋지 않은가요?’ ‘멀쩡하던 날이 갑자기 풍랑이 일어 며칠 동안 배가 못 다니는 일이 많지요.’ 

내가 이 섬에 온 가장 큰 목적은 섬 가운데 있는 산에 올라 제주 섬을 촬영하기 위한 것인데, 산에 올라가 보지도 못 하고 떠나야 할 형편이라 난감했다. 일단 해가 저물기 전에 마을이라도 한 바퀴 돌아봐야 할 것 같아 서둘렀는데 그리 넓지 않은 마을은 아기자기한 돌담으로 쌓여 정겹다.

여서리를 찾았던 사람들은 이곳 주민들이 제주해역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돌담이 정겹다고 한다.
여서리를 찾았던 사람들은 이곳 주민들이 제주해역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돌담이 정겹다고 한다.

좁은 돌담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다 섬 중턱에 올라서니 폐교가 된 옛 청산초등학교 여서분교가 긴 잡초 속에서 흑염소 몇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나그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여서리 마을은 동북 방향 청산도 쪽으로 제주도를 등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산허리에 형성되어 옹기종기 모여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돌담이 마을의 상징인 듯하다. 48가구에 8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지만 현재 사는 주민은 많지 않다는 한 주민의 설명이다.

섬에 도착하여 놀란 것은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항구 앞 몇백 m 정도인데, 가정마다 차들이 세워져 있다.

등록된 차량은 승용차 7, 승합차 1, 화물차 5대고, 낚시꾼들이 가져온 차까지 합치니 ‘이 작은 섬에 무슨 차가 이렇게 많지’하고 놀라게 한다. ‘다른 섬같이 양식장도 없어 특별한 소득이 없는 섬 같고, 차를 타고 다닐 만한 도로가 없는데 왜 차가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여기서 필요한 것보다는 밖에 나갔을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     

섬 중턱에 위치한 동내 유일한 우물. 이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 섬 주민들의 생명수이기도 하다.
섬 중턱에 위치한 동네 유일한 우물. 이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 섬 주민들의 생명수이기도 하다.

■ “여서도 가면 애 배야 나온다”

한때는 지도에도 없는 섬으로 불리기도 했던 여서도, 직선거리로 제주까지는 40㎞, 완도까지는 41㎞로 어찌 보면 제주도가 가깝다. 그래서 제주에서 가장 가깝게 보이는 모양이다.

한 기록에 보면 옛날 제주로 오가는 풍선들이 이곳을 지날 때면 산돼지를 섬 앞바다에 던져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용왕님께 빌었을 정도로 파도가 거센 곳이다. 지금도 제주로 향하던 배들이 풍랑을 만나면 이 섬으로 피항하는 곳이기도 하고, 제주와 가깝다 보니 한때는 제주도 해녀들이 여기서 물질을 많이 했었으나 지금은 물질하는 제주 해녀는 없고 계절따라 청산도에 살며 물질오는 해녀들이 있다고 한다. 

‘완도 군지’에 따르면 고려 1077년(목종 10년) 탐라 근해에 일주일간 대지진이 지속된 뒤 바닷속에서 큰 섬이 솟았는데, 이 섬을 고려의 ‘려’자와 상서롭다는 ‘서’자를 따서 여서(麗瑞)란 이름을 붙였다.

여서도 항구를 벗어나면 사람 만나기가 힘든데 어렵게 텃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서도 항구를 벗어나면 사람 만나기가 힘든데 어렵게 텃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산으로 만들어졌다지만 화산섬 같지는 않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여서도에서 발견된 패총이 7000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일 것이라는 주장으로 볼 때 이 섬에 사람이 산 역사는 길다. 또 외딴 섬이라 그런지 왜구들 침범이 심했고, 근세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690년대라 적고 있다. 

이장을 지냈던 정정석(68)씨는 “오래 전에는 제주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테우가 여서도에 많이 왔어요. 여서도 일대서 자리가 많이 잡혀 한때는 이곳에서 자리를 잡아 젓을 담아 가기도 했고요. 자리 테우가 올 때는 제주도 수박 등 농산물을 싣고 와 이곳 주민들이 먹기도 했지요. 저 뒤에 있는 여호산(麗湖山)에 올라가면 제주도 전깃불 켜진 것이 보일 만큼 가깝지요. 제주 해녀들이 물질도 많이 오기도 했고요”라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제주 해녀들이 이 섬으로 물질 왔다가 날씨 때문에 섬에 발이 묶여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갇혀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섬 총각 하고 눈이 맞아 섬을 나갈 때는 애엄마가 되는 경우가 많아 제주 사람들 사이에선 ‘여서도에 가면 애 배야 나온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했단다.

여호산을 오르는 등반로.
여호산을 오르는 등반로.

■ 다음 기약하며…여호산을 내려오다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아침 항구로 갔더니 ‘오늘 풍랑 때문에 배가 출항하지 않는다’는 말에 ‘역시 여서도구나’ 항구에서 바라본 바다는 잔잔한데 조금만 나가면 파도가 거세어 운항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잘됐네 덕분에 섬을 더 돌아볼 수 있고’ 여호산을 올라 혹시 제주 섬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우선 밝은 날 섬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골목길을 돌아다녔으나 사람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고, 한 할머니가 텃밭에서 일하는 모습 정도였다.

식당이 없어 어렵게 한 가정집에 부탁하여 식사를 마치고 여호산을 올랐다. 경사가 심해 힘들 것이라는 청년의 설명을 듣고 산길에 나섰는데 조금 올라서자 아담한 숲길로 이어져 예상보다 아름다운 등산로였다. 뱀과 지네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에 긴 작대기를 들고 오르는데 독사가 사방에 또아리를 틀고 있어 ‘정말 뱀이 많은 산’임을 실감케 했다.

여호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여서리 항구와 마을 전경.
여호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여서리 항구와 마을 전경.

헉헉거리며 1시간 올라 여호산 정상에 올랐으나 안개비가 내려 제주 섬은 볼 수가 없어 아쉬워 혹시나 하고 주변을 살피며 날개이기를 기다렸으나 빗줄기가 더 강해져 하산을 서둘렀다.

여서도에서 제주 섬을 촬영하기 위해 어렵게 찾아와 이틀 머물렀지만 역시 날씨 때문에 못내 아쉬움을 남긴 채, 꼭 다시 여서도를 찾아 여호산 정상에서 제주 섬을 촬영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참으로 오기 힘든 섬을 떠나왔다.<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여서도 해역을 지나는 대형 화물선.
여서도 해역을 지나는 대형 화물선.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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