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인어의 소리 같은…” 제주해녀 모습 담긴 日잡지
“마치 인어의 소리 같은…” 제주해녀 모습 담긴 日잡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13 2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틀리에’(アトリエ NO.483) 1967년 5월호
‘아틀리에’(アトリエ NO.483) 1967년 5월호 표지.
‘아틀리에’(アトリエ NO.483) 1967년 5월호 표지.

서점에 가서 특정한 목표를 정해 놓고 찾는 게 아니라 그저 책이 좋아서 이 책 저 책 고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책을 구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저 제목이나 표지가 맘에 들어서 일 때도 있고, 목차를 보다 관심 가는 부분이 있어서일 때도 있다. 꼭 그 책이 맘에 쏙 들어서는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가는 책이라 데려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새 책을 취급하는 서점에서 그런 식의 책 쇼핑(?)을 그것도 무절제하게 하다가는 가산탕진하기 딱 좋은 일이지만, 헌책방에서는 그런 호사를 누리기에 그리 큰 부담이 없다. 개중에 좀 부담이 가는 책은 좀 넉넉할 때 데려오면 된다. 주머니 사정이 그리 녹록지 않아도 가능한 소소한 나만의 즐거움이며, 헌책방 애호가만의 특권이다.

‘아틀리에’(アトリエ NO.483) 1967년 5월호 목차.
‘아틀리에’(アトリエ NO.483) 1967년 5월호 목차.

그렇게 우연히 만났던 책들은 대부분 이미 나의 식구가 된 다른 책들 더미 속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다소곳하게 지내게 된다. 그렇게 책방 한 귀퉁이에서 한가한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이 책이 여기 왜 있나 싶은 주인의 무심한 손길에 다시 바깥 세상을 구경한다. 그제서야 ‘아~ 그 때 그래서 이 책이 좋았었지’ 하다가도 또다시 책 더미 속으로 직행한다. 언제 다시 꺼내 볼지는 모르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주인의 머릿속에 슬며시 각인(刻印)된다. 내게 그런저런 책이 있다는 걸….

그러다 어떤 특정 분야의 자료를 찾는 손님의 얘기를 듣다보면 불현듯 다시 생각이 난다. ‘아~ 그 때 그런 놈이 있기는 있었는데’하며 떠올리기는 하지만 책방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미리 한 곳에 정리해서 모아둘걸 후회를 하면서 궁시렁 궁시렁 책방이랑 창고 이곳 저곳을 뒤적이지만, 그 놈은 그간의 서러움을 만회하려는지 주인의 애를 태운다. 이젠 다시는 그렇게 구박하지 않으리라 다짐은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도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옛정을 생각해서 슬며시 다시 나타나는 의리 있는 애들도 있다. 오늘은 그 기특한 놈 한 권을 소개해 보련다.

‘아틀리에’(アトリエ) 1967년 5월호에 수록된 쯔루타 고로(鶴田吾郞)가 1920~30년대에 그린 유화 작품 ‘제주도의 해녀(濟州島の海女)’(F8호)
‘아틀리에’(アトリエ) 1967년 5월호에 수록된 쯔루타 고로(鶴田吾郞)가 1920~30년대에 그린 유화 작품 ‘제주도의 해녀(濟州島の海女)’(F8호)

전에 일본의 한 헌책방에서 발견해 데려다 놓은 미술잡지 ‘아틀리에’(アトリエ NO.483) 1967년 5월호가 바로 그 놈이다. 당시 ‘바다 그리는 법’(海の描き方) 특집호라 내 눈에 들어 온 잡지가 무에 그리 특별할까마는 나중에 다시 들춰보다 보니, 이 잡지의 특별함은 일본의 서양화가이자 판화가인 쯔루타 고로(鶴田吾郞 1890~1969)가 그리고 쓴 ‘제주도의 해녀(濟州島の海女)’라는 제목의 F8호짜리 유화 컬러사진과 수필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912년 경성일보(京城日報)에 입사해서 조선의 미술과 관련된 기사와 평론을 쓰면서, 1913년부터 1920년까지 조선·만주·시베리아에 체류했었던 그는 1935년에는 ‘제주도의 자연과 풍물(濟州島の自然と風物)’(中央朝鮮協會)을 발표하기도 했던 제주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가 마치 ‘인어(人魚)의 소리’와 같다며 깨끗한 피부와 아름다운 용모의 해녀들 모습에 놀라면서 직접 그린 제주 바다와 해녀의 모습이 반갑다.

글 말미에 그래도 세계 각지를 다녀본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름다운 제주도 밤하늘의 별들이었다는 그의 고백을 보면서, 아직도 나의 기억에 생생한 십여 년 전 제주로 이주해 온 첫날 저녁에 본 밤하늘의 별들을 떠올려 본다.

‘아틀리에’(アトリエ) 1967년 5월호에 수록된 쯔루타 고로(鶴田吾郞)의 글 ‘제주도의 해녀(濟州島の海女)’
‘아틀리에’(アトリエ) 1967년 5월호에 수록된 쯔루타 고로(鶴田吾郞)의 글 ‘제주도의 해녀(濟州島の海女)’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