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대표 농작물로서 경제·농업 발전에 기여한 고구마
제주 대표 농작물로서 경제·농업 발전에 기여한 고구마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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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전체가 화산암으로 덮여 있기도 해서 쌀농사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제주도에서는 과거 ‘고구마’가 대표적인 농작물로 여겨졌습니다. 조리해서 먹는 식량으로 제주 분들의 식문화와 생활을 지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1980년대까지 전분과 주정(발효 알코올)을 제조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2004년 제주도청이 발간한 ‘제주도지’의 ‘고구마의 생산’ 항에도 고구마를 이용한 전분과 주정공업이 일찍이 제주의 경제·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주의 고구마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그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일본의 오키나와현 가데나쵸(沖縄県嘉手納町)에 이르렀습니다. 가데나쵸 미군 가데나 비행장은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가데나쵸는 전체 면적의 약 82%를 미군 시설·구역이 점하고 있고, 가데나 비행장은 유엔군 지위협정에 따라 주한유엔군에 대한 병참 원조(Logistic Support)를 제공하는 시설 중 하나로 지정돼 있어, 제주는 물론 한국 전체의 안보상 후방 지원의 핵심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데나쵸와 제주와의 인연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제주에 고구마가 어디서 유래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한국에 고구마가 유입된 것은 1763년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조엄이라는 인물이 쓰시마(対馬)에서 가져온 것이 최초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주에는 2년 뒤인 1765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는 고구마 재배가 널리 정착되지는 못했습니다. 제주에서 고구마가 널리 재배된 것은 1880년대, 가파도와 우도에서 일본 어민들로부터 재배법이 전해진 이후부터라고 하고, 가파도의 ‘가파도 개경 120주년 기념비’에 그런 내용의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마는 쓰시마에는 어떻게 유래되었을까? 오키나와현 가데나쵸에 따르면, 맨 먼저 1605년, 가데나 출신의 신코센(進貢船)의 총관(總管)직(사무장), 노구니(野國) 총관이 푸젠(福建)에서 고구마 묘종을 가지고 돌아와 재배에 성공. 같은 해, 역시 류큐왕국의 관리인 기마 신죠(儀間真常)가, 노구니 총관으로부터 재배법을 전수받아 오키나와 본섬에서의 보급을 시작했습니다. 이 고구마를 1611년, 류큐왕국의 쇼네이(尚寧)왕이 류큐에서 사츠마(薩摩)(현재의 가고시마현(鹿児島県))로 돌아가는 사츠마번(薩摩藩) 장병들에게 기념품으로 전달했습니다. 이것이 화산지질로 쌀농사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땅이 많은 사츠마에서 정착하여, 마침내 규슈(九州) 전역으로 확산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1720년, 스야마 돈오(陶山純翁)라는 인물이 고구마를 쓰시마에 전하였고, 1763년에 조선통신사인 조엄이 돌아오는 길에 가져가면서 전래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에서 일찍이 식문화와 경제를 지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고구마 유래의 역사를 살펴보니, 쓰시마·규슈를 거쳐 오키나와현 가데나쵸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과거 제주에서 고구마는 식재료로서도 경제·농업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도 큰 역할을 했는데, 가데나쵸에서도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컸다는 면도 있어서 힘든 생활을 했던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명을 지탱해 왔던 고구마를 전해준 노구니 총관은 지금도 존경받는 위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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