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공과에 좌우되는 훈장의 운명
대통령 공과에 좌우되는 훈장의 운명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10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문상 서귀포문인협회 회원·서귀포시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

지난해 연말,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35년 봉사한 대가임에도 앞으로 이 훈장의 운명을 가늠해볼 때 뒷맛이 개운치 않음은 왜일까?

상훈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훈·포장은 각각 12종으로서 ‘포장은 훈장 다음’가는 훈격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국가나 사회에 훈공이 있는 자에게 수여한다는 의미에서 그 차이를 구별할 수는 없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근대적 상훈제도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던 구한말 광무 4년 4월 17일, 칙령 제13호로 훈장 조례를 제정하고 금척대훈장 등 4종의 훈장을 두었으며,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4월 27일, 처음으로 건국공로훈장령이 제정·공포되면서 새로운 상훈제도가 시작되었고, 1963년 12월 14일, 새로운 상훈법을 제정함으로써 각 개별법령으로 운영해 오던 훈장령을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훈·포장은 휘장과 더불어 그 증서를 수여하는데, 증서의 구성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대통령 ○○○’으로 표기되고 그 아래에 ‘국무총리 ○○○’으로, 다시 그 아래에는 ‘이 증을 훈장부에 기재합니다. 행정안전부장관 ○○○’으로 표기된다. 포장 역시 같은 방식이다.

문제는 증서의 수여 일자를 기준으로 집권 대통령과 국무총리, 행정안전부장관의 서명이 표기된다는 점이다.

훈·포장은 헌법에 근거하여 그 공적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수여하는 정부 서훈임에도 우리나라 헌정 사상 불운의 대통령 이름 때문에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빛바랜 훈·포장이 되곤 한다. 실제 가족사진보다 소중하게 액자에 내걸어진 훈·포장이 장롱 속 천덕꾸러기로 전락된 사례를 보아왔다. 따라서 상훈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서명(이름)을 삭제하는 대신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기관 명칭과 대한민국 국새만으로 재구성하여 그 값어치를 영구적으로 되새겼으면 한다. 현실적으로 법 개정이 어렵다면 수상자에게 선택권이라도 부여했으면 한다.

본디 ‘상’이란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국가가 인증하는 제도로서 개인의 명예를 뛰어넘어 가문의 명예로 이어지는 훈격이 자칫 대통령의 지지율이나 시대적 비운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것은 불운이 아닐 수 없다.

한편 33년 이상 공직에 정려함으로써 공무원에게 수여되는 근정훈장의 경우 부지런히 출근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여되는 개근(皆勤)상에서 벗어나 근정(勤政)훈장의 값어치를 되새겨야 한다는 국민적 채찍이 가해진 적이 있다.

2016년 정부는 ‘훈장 나눠먹기식’의 국민적 비판을 없애기 위해, 금품·향응수수, 공금횡령·유용, 성범죄, 음주운전 같은 시대적 중대비위를 저지른 공무원에게는 근속에도 불구하고 포상에서 영구 제외하는 새정부포상지침을 확정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과거 음주 등의 중대범죄가 설사 사면을 받았다손 치더라도 상훈 추서만큼은 ‘영구 배제’라는 철퇴를 가했다는 사실이다. 실제 많은 공직자가 정년이나 명예퇴임을 맞이하면서도 이 규정으로 훈장추서에서 제외된 경우도 허다하다.

현행 12종의 훈·포장은 공훈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있으면서도 공무원에게 수여되는 근정훈장만큼은 5등급으로 나눠 1등급(청조근정훈장)은 장관급에게, 2등급(황조근정훈장)은 차관급이나 1급에게, 3등급(홍조근정훈장)은 2~3급에게, 4등급(녹조근정훈장)은 4~5급에게, 5등급(옥조근정훈장)은 6급 이하에게 직급별 차등 수여되고 있어 이 또한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필자는 한평생 국가와 국민 섬김에 있어 지위 높낮이로 구별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공적이 아닌 계급에 따라 훈장의 색깔을 달리한 이 제도 또한 손질을 가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