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위대한 유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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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건 문학박사

나는 서울제주도민회 편집위원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편집회의를 하다가 전임 서울제주도민회장 한 분이 1억500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우리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액수였기에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일이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서울제주도민회 신문의 ‘성금 기부’ 코너를 찾아보았다. 몇 만원에서부터 몇 십 만원까지 크고 작은 금액의 성금 기부자들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러한 정성이 모여서 현재 서울제주도민회가 들어 있는 빌딩이 마련되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고향 출신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이 조성되고 그들을 위한 기숙사까지 운영되면서 내가 제주도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 금액들이 예전에는 그냥 신문에 쓰인 숫자로만 읽혔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금액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삶의 이력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 돈을 벌기 위해 애쓰고 고생했던 일부터 가족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의 과정이 있었을까. 더 나아가서 가족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을까. 그 모든 과정을 겪어내고 기부라는 성스러운 일을 이뤄냈으니 얼마나 위대한 분들이고 얼마나 배려심 많은 가족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고향의 재경 향우회 장학금에 얽힌 사연이 떠올랐다. 내 고향은 표선면 세화리라는 조그만 중산간 마을이다. 어린 시절 아스팔트 까는 공사를 하던 장면이 기억나고 아버지가 서울에서 보내준 장학금이라면서 자랑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 모든 사업의 기부금을 보내준 분들이 재경 향우회였다. 그 당시에 있었던 회의록부터 고향 마을을 위해 기부금을 모으러 뛰어다니던 분들의 고생담까지 보고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말하는 장학금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담겨 있었다. 그 장학금의 기금은 우리 향우회의 기틀을 닦아놓으신 어르신께서 기부하신 것이라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20~30년 전에 근 3억원에 가까운 돈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으로 치면 상당한 액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은 그 분의 따님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받게 된 보험금이었다고 한다. 따님을 기리기 위한 뜻도 있지만, 그 보험금을 차마 쓸 수가 없어서 뭔가 보람된 일에 쓰려고 애쓰시다가 재경 향우회에 장학금으로 기탁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향 마을 청소년들을 위해 기탁한 그 장학금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가치를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울에 사는 고향 마을 분들과 고향 마을을 하나로 뭉치고 소통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 이후 다른 분들까지 기부금 기탁에 동참하면서 지금 그 장학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우리 마을을 지탱하는 느티나무처럼 위대한 영혼이 되어 마을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야말로 위대한 유산이 되어 우리 마을 사람들을 위로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면서 우리 삶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거울뉴런’이라는 신경이 있다. 이것은 ‘타인을 모방하고 공감하는 신경’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모방하고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분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좀 더 살만해지고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한 유산을 서울제주도민회의 ‘성금 기부’ 코너에서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린 셈이다. 나도 그 분들처럼 위대한 유산을 남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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