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로’의 꿈
‘비자림로’의 꿈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0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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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

지난해 봄 우리 집 정원에는 외톨로 서 있는 야자나무에 한 쌍의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 어린 새끼까지 키워 출가시킨 이들은 흔치 않은 행운을 우리 가정에 안겨준 복덩이였다.

그렇게 행복하기만 하던 까치 가정에도 겨울바람은 불행을 예고했다. 세찬 바람에 노출된 둥지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록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막무가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비바람 몹시 불던 날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둥지를 받쳐주던 나뭇가지들이 꺾이고 부서져서 녀석들의 보금자리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추운 겨울날 사라진 둥지 주변을 대책 없이 맴도는 녀석들을 바라봐야만 하는 내 처지 또한 부끄럽기만 하다.

제주시로 향할 때 거처야 하는 ‘비자림로’에서도 까치들이 산다. 녀석들에게도 겨울바람이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까치들 못지않게 이 도로에는 걱정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은 오가는 차량들로 언제나 만원이다. 가뜩이나 요즘 같은 겨울날씨는 결빙현상까지 겹쳐 교통사고마저 잦다. 좁디좁은 편도 1차선 도로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차량들의 답답함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때를 놓쳐 고생하던 우리 집 까치부부의 모습이다.

진작 옮겼어야 할 둥지를 방치했다가 불행을 자초한 까치의 미련한 모습과 비좁은 도로를 진작 넓혀놓지 않아 자초한 이 도로행정의 모순이 어쩌면 이렇게도 닮은꼴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과 천연기념물인 ‘비자림’과도 통하는 이 도로는 제주시·성산읍·구좌읍을 잇는 제주 동부지역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산업도로다. 제주 서부지역의 ‘평화로’에 대정·안덕을 잇는 왕복 4차선 산업도로가 있다면 제주 동부지역 ‘번영로’를 잇는 이 ‘비자림로’ 역시 그 도로와 맥을 같이 할 만큼 생명선이다. 일일교통량도 1만3000대에 이를 만큼 왕복 4차선 도로의 요건을 훨씬 넘어선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도로는 아직도 편도 1차선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주도는 지난 3년 전 이 도로를 편도 2차선으로 확장코자 공사를 시도했다. 그런데 공사는 시작과 동시에 멈춰버렸다.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도로변 숲에 애기뿔쇠똥구리, 팔색조, 두점박이사슴벌레 등이 서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환경연구가나 환경전문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자연환경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시골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고 자랐으며 팔십이 넘은 지금도 고향에서 농사일에 손 놓지 못한 채 살고 있으므로 생태환경에 대한 애정 역시 남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환경이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은 오염된 주변 환경에서 서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편도 1차선의 비자림로가 이를 웅변한다. 이미 이곳은 빈번한 차량과 사람들의 왕래 등으로 생태계의 신비는 상실한 지 오래다. 보호가 요구되는 팔색조 등은 확장코자 하는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애기뿔소똥구리는 숲이 아닌 목초지에서 발견됐다. 이는 비자림로의 환경이 그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생태 환경이 망가진 이 도로를 자연의 생명체와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쾌적한 친환경 도로로 확장 정비하는 일이다. 더 나가서는 그들이 옮겨가 살고 있거나 살고 싶어 할 대체 생태환경단지를 조성해주는 것만이 서로를 위한 답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존립은 어느 한 쪽의 형편만을 주장하거나 어느 한 쪽의 생존만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서로의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하려는 공생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행정의 논리, 환경단체들의 논리 역시 어느 한 쪽이 강자이거나 약자가 되지 않도록 개발과 보존에 균형을 맞춰져야 하는 거역할 수 없는 논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자연의 공생논리에 대한 가치성이고 진리다.

부디 2022년 새해는 제주 동부지역의 생명줄이며 산업도로인 ‘비자림로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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