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을 쓰다
자서전을 쓰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2.2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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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십여 년 전에 웰 다잉 연구소에서 일 년간 공부한 일이 있다. 신문의 광고를 보고 병중의 시어머니를 잘 보내려는 마음에서 찾았는데 내 공부였다. 죽음을 대처하는 마음가짐과 미리 준비해두는 과정이었다. 죽음의 영화와 죽음에 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쓸 때는 생소한 세계여서 무거웠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과정 중에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이 있다. ‘여자가 무슨 내 일생 전기를 써. 남자 뒤에 있으면 되지.’ 나야말로 처음엔 무반응이었다. 말로야 ‘일생을 풀어 놓는다면 소설책 두 권은 되리라.’라고 친구들과 넋두리도 한다. 웰다잉 공부를 통해 내가 갑자기 죽고 나면 누가 정리해 줄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삶까지 한 권으로 만들어 보라는 숙제였다. 스무 권이 넘는 앨범을 정리할 좋은 기회였다.

자서전 안에는 연대표를 작성하고 나이를 기준으로 사회적 사건과 가족사 중요한 일만 골라 양쪽으로 나열했다. 연대표에 따라 어린 시절 젊은 시절 결혼 생활에 이어 특이사항을 요약정리해 글로 썼다. 이 과정을 글로 쓰다 보니 되돌아보며 많이 울었다.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은 내 일생의 치유 과정이었다. 삶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가슴속에 뭉쳐 있던 앙금이 날아가듯 시원했다. 간추려낸 사진과 자료가 한 권이 되었다. 매주 색다른 수업하면서 석고로 내 주먹을 동상 굳히듯 만들 때는 “이 손으로 못 하는 일이 없었네.”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도 했다.

나의 일생 그래프를 그리고 묘비명을 작성하며 남은 일생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도 썼다. 그림과 희망의 목표를 담아 보았더니 욕망이 생겼다. 불교 공부한다고 말만 했지 부처님 발자취 따라가본 곳이 한 손안에 꼽혔다. 갑작스러운 암 수술로 미작성 상태가 되고 말았다.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올해 10월에 사단법인 웰다잉으로 출범하면서 추가 제출할 기회가 주어졌다. 암이 발생하면 몇 년 안에 죽는 줄 알았던 내 인생에도 꽃이 피었다. 등단해 책 한 권도 못 펴고 죽음에 이를지 불안했던 요소도 문진금을 받으며 ‘빛의 만다라’로 내놓았다. 환자복 입고 피주머니 두 개를 차고 수술해 주었던 교수님과 환우와 찍었던 자료도 찾아냈다.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물결이 줄을 이었다.

버킷리스트 중에 스리랑카의 2500년 된 보리수나무 친견과 티베트 영화 속의 만다라 제작하던 사찰 방문은 쾌거였다. 추가로 한 권을 더 만들어 두 권을 제출했다. 자식과 손자가 나를 생각할 제사상에라도 이 두 권을 올려 추억한다면 그 이상 값진 것이 없겠다. 이젠 ‘만다라를 찾아서’ 책을 내고 싶다. 이래야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이 완성되지 않을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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