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전문가 되기 싫은 날
청년에게 전문가 되기 싫은 날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2.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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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칼럼니스트

청년이라는 화두는 나에게는 늘 공허하고 실체가 없는 주제이다. 너무나 많은 사업에 포함이 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무언가 그들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오리무중이다. MZ세대라고 말하면 머릿속은 더 안갯속이다. 청년은 이제 누군가 심어놓은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수많은 프로젝트의 상수가 되어버렸다. 

원도심을 살리기 위한 청년들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니 그 중 한 세션에 전문가로 참여해 토론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칠성로를 문화를 통해 살려보자는 영 감이 잡히지 않는 주제를 제안받고 나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아마도 도시재생 일을 했던 이유로 간단한 특강을 했던 게 원인인가보다. 

날벼락과 같은 제안인지라 속으로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주입된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듯 ‘청년들이 하는 일에 초대해 준다니 흔쾌히 시간을 내지요’라는 입에 발린 대답을 하고 말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가증스러운 대답이 아닐 수 없다는 자책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연말에 늘 닥치는 과로의 바다에 풍덩 빠져 헤매다 보면 그날은 어김없이 온다. 가능한 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고 나와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현장을 찾았다.

내가 참석한 토론회는 ‘일곱 개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주제하에 red라는 청년극단이 주재하는 7개의 문화 행사 중 하나였다. 그 행사에는 작은 음악공연, 청년 창업을 주제로 한 토론회, 원도심을 문화로 살려보고자 하는 토론회, 클래식공연, 작곡가와의 대화, 창작극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기, 극단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참으로 순서 없이 뜬금없는 행사가 하루 안에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단한 정열이다. 

무엇보다 기획에서 준비와 진행까지 극단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인가 토론회가 시작되면서 좀비 같은 몸에서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발제자들이 스스로 칠성로의 문제를 진단하고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는 어려움과 현실과의 괴리를 이야기하고 외부의 도움 없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문화활동을 하면서 지내오고 있는지를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갑자기 청년이라는 추상적 단어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청년들을 모른다고 청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외면하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들의 처한 현실과 노력을 외면함으로써 내가 가진 기득권과 우월감을 쥐고 가려던 것은 아닌가.

어이없게도 꽤나 많은 말을 했음에도 나의 말을 전문가의 말로 경청해준 젊은이들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밀려들었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원도심이나 칠성로에서 이루려 한다면 적절한 장소를 물색해서 ‘점거전략’을 쓰고 결국 접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만이 기억난다. 

기성세대는 왜 청년들에게 세상이 어렵다는 이야기만 하는 것일까. 말을 안 해도 어려운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어떻게 풀어줄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할 일인데 그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청년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빨리 기성세대가 되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잣대는 얼마나 기성세대와 근접해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일례로 공간에 맞는 공연기획을 공모하지만 언제나 활용할 수 있는 연습실을 지원해주지는 않는다. 준비하는 과정은 외면한 채 청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현실에서 소모되는 과정의 비중이 한결 높다. 청년들의 노력을 평가하는 대신 이들이 활동할 과정을 지원하는 일이 훨씬 필요한 일이다.

작은 토론회지만 청년들에게 그들의 결과물이 기존의 틀에 맞춰 소모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한 주말이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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