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산다는 것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2.2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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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친구와 만나서 세 시간 수다 떨다 헤어졌다.

“잘 가. 또 보자.” 하고 돌아서 오는데 살짝 눈물이 났다. 나이 탓일까. 요즘엔 종종 그런 일이 있다.

생명이 있는 것에 또 만난다는 보증은 없다. 

누구나 죽는다. 영원히 살았으면 하는 미련은 없다. 만일 오백 년 살기로 계약을 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끔찍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의 시간은 오늘의 시간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시간 속에서 삶을 증명하면 된다. 이것이 죽음을 의식한 위에서의 ‘생’의 시간이 아닌가 한다.

시간은 빌릴 수 없다는 일을 종종 잊고 산다. 내일이 있으니까, 내일 하면 되니까 하는 이유로 자신을 납득시키면서, 무한정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왔다.

산다는 것은 더럽혀지는 일이라고 한다.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게 삶을 조금이라도 정화하는 일이라고 한다.

러시아 작가 코롤렌코의 마카르라는 작품이 있다. 시베리아 시골에 사는 농부 마카르는 노동을 해도 항상 배고프고 가난했다. 성탄 대축일 전에 다섯 수레의 장작을 담보로 1루블을 챙긴 마카르는 보드카를 사서 마시고 취해버린다.

그 일로 집에서 쫓겨난 그는 울창한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얼어 죽고 만다. 신의 나라로 끌려가서 심판을 받게 된다. 생전에 잘한 것과 못한 것에 대한 심판이다. 거짓말쟁이에, 게으름뱅이, 게다가 주정뱅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마카르지만 그는 유창한 변론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변명한다. 

재판은 생전의 그의 선악을 판단하지만, 인간이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욕망에서 나온 죄라 본다. 잔인한 노동조건으로 인한 비참한 생활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마카르는 동정 표를 얻고 재판은 그를 선인으로 판결을 내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심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마지막을 생각한다는 것이리라. 나 자신의 도달점은 어디일까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죽음은 모든 것에 대한 약속 위반이다. 내일 하려고 했던 것도 할 수 없게 되고 타인과의 약속도 본의 아니게 지킬 수 없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 마치 그것을 알지 못하는 듯 미친 듯이 산다.

사는 동안에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하는 얘길 많이 듣는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의미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가.

인간, 살아있는 동안에 그 사람밖에 할 수 없는 것을 후세에 남겨야 한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인간은 바보다. 하다못해 빚이라도 남겨야 기억할 것이 아닌가라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동네에서 들어왔던 얘기가 공허하게 남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당신이 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라. 당신 자신에게 기회를 주어라 스스로가 형편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목표를 높이 세워라. 인생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자신의 삶은 자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신과 계약하는 것이 자신의 ‘생’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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