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아래 세염, 드라마가 되다
물 아래 세염, 드라마가 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2.2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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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영 문화기획자·관광학 박사

‘세염’은 제주어로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를 의미한다. 때론 ‘셈’으로도 쓰인다.

제주시 북촌 마을, 뒷개에서 다려도에 의지하며 곰식이(돌고래)를 벗 삼아 물질하는 해녀들은 하나같이 물질할 때 세염이 더 많고(물 아래 셈은 더 많주), 세염은 뭍에 있거나 물 위를 유영할 때는 없다가 물속에만 들어가면 생긴다고도 했다.

그녀들 이야기 속에서 세염은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뿐만 아니라 슬기를 내기까지 이어지는 오만가지 생각,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는 일상의 시름과 숱한 감정 등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뒷개할망 춤 추다’는 북촌 해녀 물 아래 세염이 물 위 드라마로 탄생한 북촌해녀 브랜드 공연이다. 지난 6월에 시작하여 10월 20일, 11월 9일 두 차례 공연을 마쳤는데 놀이패 한라산이 북촌어촌계와 협업으로 공연을 연출하는 작업에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후원하였다.

제주 해녀 콘텐츠와 예술 장르와의 단순한 결합, 해녀 콘텐츠의 단편적인 활용을 뛰어넘어 해녀 삶을 헤아리고 그녀들과 어울린 시간과 노력이 깃든 작품을 탄생시켜 공연 관람객 마음에‘이것이 제주 해녀다’고 새기는 공연을 목표로 했다.

▲‘뒷개할망 춤 추다’는 제주 해녀 문화가 문화예술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자 했던 융복합프로젝트였다. 우선 프로젝트 모델이 리서치 아카이빙, 멘토링·워크숍, 공연 등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단계별로 추진되도록 구성되었다.

‘리서치 아카이빙’은 북촌해녀와 마을 고유의 콘텐츠 발굴을 위한 연구조사·기록작업이다. 해녀들의 일상 공간, 해녀 관련 장소 탐방이 이루어졌고 이런 과정에서 마을 주민, 어촌계 관계자, 해녀 분들과 라포 형성도 이루어졌다.

물질 장소인 다려도와 북촌포구 앞바다, 물속 세상에서 만나는 돌고래 이야기는 포스터 그림에 반영되었다. 마을의 정체성인 북촌 포구 일원에는 북촌 등명대, 가릿당, 사원이물, 도아치물, 육각정, 구름다리 등이 있는데 이들은 마을 주민과 해녀들에게 문화적 의미를 주는 장소들이다. 이러한 장소들의 의미들이 꿰어져 공연의 주요 동선과 장면들로 태어났다.

테우를 타고 뱃물질 하던 이야기, 내(노)젓는 노래, 물질하는 마음, 다려도와 먼바다 사이에 있는 해녀들의 작업공간인 여의 이름들은 공연 주제가인 ‘여월이’의 리듬과 가사에 영향을 주었다.
‘워크숍·멘토링’은 음식, 미술, 연극, 악기, 음악, 움직임 등 6개 분야가 관련된 작업이다. 아카이빙 리서치 단계에서 도출된 북촌해녀 문화콘텐츠를 공연과 접목시키는 필수 단계로 해녀와 아티스트가 서로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주고받으며 작업에 참여하고 궁극적으로 ‘뒷개할망 춤 추다’ 공연에 연행 동료로 서기 위한 연습을 함께했다. 

마지막으로 공연에는 7명의 북촌해녀 배우들이 20여 명의 아티스트들과 같이 무대에 섰다. 무대는 북촌 마을, 그 중에도 물때가 되면 해녀들이 물질가자며 서로를 부르고 걷는, 탈의장으로 나있는 성창(포구)이다. 이머시브 시어터 연극을 지향했기에 관객들이 공연에서 배우들과 함께 북촌해녀들의 터전인 북촌포구 구석구석을 누비는 가운데 해녀의 삶 속으로 깊이 빠지도록 연출하였다.

▲물 아래 세염이 북촌포구를 누비는 드라마가 되던 날. 조용하던 북촌포구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팔각정 앞마당에 모여든 사람들은 아이, 어른, 동네 사람, 이웃 마을 사람, 관객 할 것 없이 ‘이여싸’ 노래를 목청껏 따라 하고 춤을 배우고 지를 싸느라 분주했다.

관객들은 물질 가자며 사람들을 부르는 해녀들을 따라 북촌포구을 누볐다. 해녀탈의장 앞에서 훌쩍이고 있는 열네 살 어린 해녀 영월이, 다려도 앞바다에 홀로 남겨졌던 영자, 대상군 은자 등 삶의 서사가 잔잔하게 펼쳐지다가도 휴식을 위한 바다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한 바다인가라는 이해관계의 갈등 구조 속에서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뒷개할망 춤 추다’는 물 아래 세염에서 출발하여 해녀 삶이라는 서사 위에 탄생한 북촌해녀 드라마다. 이 해녀 문화와 문화예술의 화학작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데 기여한 기폭제가 있다면 그것은 ‘비록 힘들고 고단한 삶이지만 그 삶에는 늘 지속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동력들이 있게 마련이다’는 가설이자 결론이다. 북촌해녀들에게 그 동력들은 물 아래 세상, 물 벗이자 보호자인 곰식이, 그들의 터전인 불턱과 여, 다려도 등이었다.

기획자의 관점에서 보면 물 아래 세염에 대한 탐색이 결국은 삶에 대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해를 넘기는 시점에서 서 있다. ‘현재를 버티는 힘, 내 삶을 지속시키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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