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또 다른 배역 ‘관객(觀客)’
연극의 또 다른 배역 ‘관객(觀客)’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2.19 2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진섭 문화예술연구소 함덕32 대표

최근 한 달간 제주 연극계가 모처럼 부산하게 움직였다.

지난 11월 중순 극단 ‘가람’을 비롯하여 도내 여섯 개의 극단이 ‘제주 더불어-놀다 연극제’에 참여한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공연들이 진행됐다.

먼저 극단 ‘in’과 극단 ‘마음 같이’의 마임공연을 비롯하여 ‘들꽃’(퍼포먼스단 몸짓), ‘취급’(오이예술극장), ‘늙은 부부이야기’(세이레 아트센터), ‘3代째 손 두부’(극단 이어도), ‘동행’, ‘언덕을 넘어서 가자’(극단 가람) 등의 작품들이 연이어 무대에 올려졌다.

이번 공연에는 제주에 내려와 연극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배우 최종원과 강상훈, 정민자, 고가영, 강정균, 현대철 같은 도내 중견배우 또는 재경 제주 출신 배우가 참여했다.

극장 객석에서 그들의 연기를 보며 호흡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관객으로서의 특권과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연극은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현장성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비록 입장 제한과 거리 두기로 객석의 후끈한 열기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모처럼 공연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루빨리 공연조건과 상황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며 관객의 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폴란드 연극 연출가 그로토프스키는 ‘가난한 연극을 향하여’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공연에 필요한 일체의 장치들을 제거할 수는 있으나 배우와 관객 간의 관계가 없이는 연극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배우와 관객이야말로 연극의 필수 불가결한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연극의 원초적 형태라 할 수 있는 굿의 연행과정을 보더라도 참여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마당극의 경우 광대들은 현장에 모인 청중들의 열기와 그 에너지를 받으며 등장한다. 이때 청중들은 광대의 연기와 대사에 ‘얼씨구’, ‘좋다’ 등의 추임새로 화답하며 극적 반응을 고조시킨다. 이처럼 배우와 관객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단순한 오락, 그 이상의 사회, 문화적 집단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공연의 형태가 야외에서 실내로 바뀌고 무대장치의 다양한 기법들이 개발되면서 점차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었다. 특히 사실주의극을 중심으로 무대와 객석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제4의 벽’에 대한 묵시적 동의가 이루어짐으로써 관객의 위상이 점차 수동적 존재로 전락하였다. 무대장치와 배우의 연기를 통한 환영(幻影, Illusion)에 몰입하기 위해 최대한 반응을 자제해야 하는 것이 관객의 의무가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실내극이 그런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주의적인 극이라 하더라도 배우가 일부러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제스처를 시도하기도 한다. 또한 서사극이나 심리치료극, 교육극 등에서는 극 중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되며 이 경우 관객의 반응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결국 기존의 창작자 중심의 일방향적 공연방식이 창작자, 관객의 쌍방향적 방식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처럼 배우와 관객간의 소통을 통해 그들의 정서적 교감은 확대, 강화된다. 

서울의 대학로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지방연극에서의 고정 관객, 즉 연극 마니아층은 극히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대신 공연관계자나 친인척 또는 지인들이 객석을 채우는 게 보통이다. 영상이나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연극을 보러 간다는 것이 이제는 낯선 경험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제주 연극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 요소는 작품의 질적 향상과 더불어 관객층의 확장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자 못지않게 관객의 역할과 참여가 수반되어야 한다. 금년도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관객 또한 ‘관객’이라고 하는 특정 배역에 캐스팅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연출가 버너드 베커먼의 말이 생각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