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대대로 벽장 깊숙이 모셔왔던 선조들의 유산
집안 대대로 벽장 깊숙이 모셔왔던 선조들의 유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2.1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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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古文書)

18~20세기 진도 거주했던 집안 고문서
7대 걸친 가문내력 파악할 수 있어 ‘가치’
대학시절 현장조사 추억·어르신들 떠올라
고문서(古文書) 전체 모습.
고문서(古文書) 전체 모습.

1980년대 중반 사학과에 막 입학했을 때 한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 선배들은 다수가 김용덕(金龍德, 1922~1991) 교수님을 중심으로 향약(鄕約)을 테마로 하는 향촌사회사를 전공하는 분위기였다. 당시만 해도 향약 자료가 남아있는 전국의 종가집이나 명문가 고택 등으로 현지조사를 나가는 부지런한 선배들이 많았고, 우리는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답사 다니는 재미에 선배들을 따라나서곤 했다. 그렇게 현장조사를 한번 나서면 그 지역의 대표적인 고택들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에, 선배들의 조사에 실질적인 도움은 못 되는 잔심부름꾼의 역할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고문서(古文書) 전체 모습.
고문서(古文書) 전체 모습.

그런데 이 현장조사라는 게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그 지역의 유지(有志)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고문서나 고서를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몇 시간 동안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는 선배 옆에서 함께 그 불편한 자세를 감내해야 하는 내 처지가 슬프기도 했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끝내 원하던 자료를 품에 안고 기뻐하는 선배를 보면서 그 자료에 대한 열정에 내심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들곤 했었다.

고문서(古文書) 중 필사 가승(家乘).
고문서(古文書) 중 필사 가승(家乘).

한편으로는 조상님들이 남겨 주신 소중한 자료들을 벽장 깊숙이 잘 모셔 놓았다가 어쩌다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는 우리 선배들과 같은 손님에게 자랑스레 내보이시던 그 꼬장꼬장한 어르신들이 그립기도 하다. 수많은 전란을 거치면서 불타버리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의 무관심 속에 불쏘시개나 자원재생용 폐지로 변해버린 자료들도 수없이 많지만, 선조들의 유산을 그리도 아끼고 소중히 여기시는 그런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을 사는 우리가 그 역사적 실물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문서(古文書) 중 준호구(準戶口).
고문서(古文書) 중 준호구(準戶口).

오늘날 명문대가의 고문서들은 그래도 국보나 보물 등 지정문화재로 지정되거나 박물관이나 연구기관 등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잘 보존되어 자료집으로 발간되기도 하지만, 그 가치를 공인받지 못한 수많은 중소 가문의 자료들은 여전히 우리의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TV 쇼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자료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그마저도 그저 경제적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에 머문다면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수많은 자료들은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곧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고문서(古文書) 중 전령(傳令).
고문서(古文書) 중 전령(傳令).

오늘은 얼마 전 자주 가는 중고물품점에 들렀다가 사장님의 소개로 입수할 수 있었던 도내에서 나온 고문서 한 뭉치를 소개해볼까 한다. 18~20세기에 걸쳐 대대로 진도(珍島)에 거주했던 한 집안의 고문서로 필사 가승(家乘) 2점, 준호구(準戶口) 10점, 전령(傳令) 5점, 차첩(差帖) 29점, 망기(望記) 3점, 일제강점기 이장 임명장 3점, 기타 4점 등과 상언(上言)·통문등서(通文謄書)·관자(關子)가 한 장으로 이어진 문서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1943년에 발행된 진도 관련 문서가 마지막인 것으로 보아 그 이후 어느 시점에 내도한 것으로 보인다.

무려 7대에 걸친 한 집안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는 이 소중한 자료를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그 때 그 시절의 그 꼬장꼬장한 어르신들과 선배들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고문서(古文書) 중 차첩(差帖)과 일제강점기 이장(里長) 임명장.
고문서(古文書) 중 차첩(差帖)과 일제강점기 이장(里長) 임명장.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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