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침묵하는 달’
‘모두 침묵하는 달’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1.12.1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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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이름 짓기는 재미 있다.

케빈 코스트너 감독·주연의 영화 ‘늑대와 춤을’은 실존 인물인 코만치족 추장 ‘열 마리 곰’이 등장한다.

‘열마리 곰’은 백인 처녀를 키워 ‘주먹 쥐고 일어서’란 이름을 붙여주고, 그와 결혼한 백인 존 덴버 중위에게 ‘늑대와 춤을’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사람 이름만이 아니다.

1년 열두 달을 일컫는 이름도 흥미롭다.

인디언 부족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눈과 세상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을 ‘마음이 깊은 곳에 머무는 달’이라고 한다.

또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을 ‘무소유의 달’이자 ‘모두 침묵하는 달’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시간에 대한 인식은 ‘가고 오는 것’과 그 현상에 대한 자연의 섭리가 배어 있는 것 같고 철학적 심오함마저 느껴진다.

▲어느새 12월 중순. 동지(冬至, 12월 22일)가 일주일여 앞이다.

며칠 전까지 전농로 거리에 낙엽이 수북하더니 이젠 나뭇가지만 앙상하다.

이 무렵이면 누구나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2021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위기’였다.

그리고 이 위기는 연말을 향해 달리면서 점점 더 덩치를 키우고 있다.

잡힐 것 같았던 코로나19는 집단 감염과 대유행을 반복하며 1년 내내 우리를 위협하더니 12월 들어 정말 팬데믹 ‘공포(恐怖)’로 다가왔다.

정부가 내주 중 ‘특단의 조치’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국면 반전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포함한 특단의 방역 대책을 결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볼 때 다음 주 확산세를 보겠다는 건 정치적 ‘버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경제는 또 어떤가.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라는 신종 용어가 등장했다.

시중에 너무 많은 돈이 풀려 인플레이션은 천정부지다.

부동산이 급격하게 오른 자산가격 버블 상황에서 계속 금리를 올리면 거품이 빠지면서 금융시장 혼란과 금융 위기가 올 것이 뻔하다.

취약해진 우리의 경제 구조도 이 위기를 더 두렵게 한다.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올렸고,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정부에서 청년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더 큰 문제는 저성장 경제 속에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부(富)의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주택 공급을 늘리기보다 세금 인상과 규제 등으로 수요 억제책을 썼다.

그것이 결국 부동산 가격을 급등시키는 촉매제가 된 것이다. 

다주택자에게 징벌적 과세를 하고 또 ‘핀셋정책’이라면서 전국을 쫓아다니며 규제지역을 늘리는 바람에 풍선효과가 나타나며 전국 부동산이 폭등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경제 사회 ‘12월 위기설’이다.

▲80여 일 앞에 닥친 대선 정국은 ‘코미디’ 경연장이 된 느낌이다.

시민들은 이 코미디에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한다.

인디언들은 12월을 ‘모두 침묵하는 달’이라고 하는데, 이 ‘위기’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목청을 높여 말 장난을 하고 있으니 어이없다.

이런 판국에 연말이라고 괜히 혼자 사색(思索)하다가 사색(死色)이 되는 것은 바보짓이다.

‘가고 오는 것’이야 자연의 이치 아닌가.

탁상 달력에는 침묵의 12월과 새해 1월 달이 한장에 나란히 걸려있다.

12월은 곧 끝이 아닌 시작임을 알게 해준다. 

지금 어이가 없어 다들 침묵하고 있지만, 이 위기의 책임자들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

길게 말할 필요 없다.

누군가에게는 한 장 남은 달력이 회한(悔恨) 그득한 세월의 흔적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홀가분하게 털고 가기 직전 준비로 들뜬 시간일 수도 있다.

분명 ‘새 봄’이 온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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