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땀으로 직접 쓴 기적…제주인 ‘불굴의 정신’ 증명
눈물과 땀으로 직접 쓴 기적…제주인 ‘불굴의 정신’ 증명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12.12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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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14. 도쿄패럴림픽 메달리스트 이동섭
어린 시절부터 기술자 꿈꿔…장관상 연속 수상 성공가도
사고로 중상 침대생활 선고…포기 않고 재활치료에 몰두
우연한 기회 배드민턴 시작…패럴림픽서 은·동메달 석권
이동섭 선수가 지난 1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태극마크를 가리키며 웃고 있다. 고경호 기자
이동섭 선수가 지난 1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태극마크를 보여주며 웃고 있다. 고경호 기자

“기적을 내가 만들어야겠다.”

평생 침대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기적도 없고 약도 없다고 했다. 아무리 사정하고 애원해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절대 이렇게 살 순 없었다. 포기하기 싫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악착같이 노력했다. 더뎠지만 아주 조금씩 팔에, 어깨에 힘이 생겼다. 매일 흘린 땀과 눈물은 기적의 재료였다.

결국 남은 인생 유일하게 허락된 공간인 침대에서 벗어나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챔피언’이 됐다.

불굴의 정신. 제주인의 DNA로 국제무대를 평정한 ‘도쿄패럴림픽 메달리스트’이자 장애인 배드민턴 세계 랭킹 1위 이동섭 선수의 이야기다.

#착실히 실현해온 ‘기술자’ 꿈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가 자꾸 고장 나는 농기계 때문에 고생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7살 때부터 내 장래희망은 ‘기술자’였죠.”

1970년 제주시 해안동에서 태어난 이동섭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기술자가 되고 싶었다.

중학생 때부터 기술 분야에 두각을 드러낸 그는 제주농고로 진학해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면서 꿈을 현실로 실현해나갔다.

특히 고등학생 당시 기능올림픽에서 입상해 전국 대회에도 출전했던 그는 졸업도 하기 전에 실습을 위해 영등포로 갈 만큼 역량을 인정받았다.

착실히 기술을 배우면서 자동차정비종합 2급을 취득한 그는 곧장 고향으로 내려와 자동차 정비 업체에 취직했다.

기술자이자 정비사로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30대에 이미 노동부장관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최연소 기록이다.

이동섭 선수는 “기능장을 받으면 나라에서 연금을 준다. 매달 연금을 받겠다는 목표로 정말 부지런히 기술을 연마했다”고 회상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두 번의 사고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두 번의 교통사고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군 입대를 앞뒀던 1991년 처음 교통사고가 났다. 무릎 관절을 크게 다쳤다. 병원 잘 못 갔으면 다리를 전달할 뻔했다”며 “사고 후 3년 간 고생했다. 다리가 제대로 구부러지지 않는 상태에서도 정비 일을 놓지 않고 실력을 키웠다. 그 덕에 노동부장관상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번째 사고는 달랐다.

2004년 어느 날 한창 일을 하던 중 지나가던 18t 트럭에 왼쪽 어깨를 부딪쳤다. 순간 몸이 접혔다. 외상은 없었지만 척추가 부서지고 숨골이 다쳤다. 왼쪽 엉덩이뼈는 옆으로 튕겨 나왔고, 중추신경 세 마디가 구부러졌다.

그는 “수술을 받고나서 20일 동안 꼼짝을 못했다. 당시 담당 선생님이 ‘평생 침대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나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그 때부터 오랜 병원생활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일어서고 싶었던 그는 서울 대형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왜 오셨나’였다.

그는 “3일 간 검사를 받고나서 의사가 하는 말이 ‘방법이 없다’였다. 집에서 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왜 왔냐고 했다”며 “심지어 기적도 없고 약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적을 내가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재활에 몰두했다.

침대 양 쪽에 묶은 붕대를 잡고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 게 시작이었다.

척추를 바로 잡기 위해 착용한 보조기를 착용하면 꿈쩍할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붕대에 매달렸다. 팔과 어깨에 힘이 생기자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됐다.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휠체어를 타고 병원 복도 경사로를 오르내렸다.
퇴원을 권유하면 다른 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는 “여러 병원을 거치다 경기도 삼육재활병원을 퇴원하면서 제주에 내려왔다. 당시 병원 측이 앰뷸런스로 공항까지 태워다 줬다”며 “이렇게 열심히 하는 환자는 처음 봤다면서 보람이 느꼈다고 했다. 그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고 말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 배드민턴

침대생활을 선고받았지만 혼신의 노력 끝에 휠체어에 앉게 된 그는 곧장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다치기 전부터 정비만큼이나 운전을 좋아했다. 우리나라에서 운전하지 못하는 차가 없을 정도로 모든 면허를 다 땄다”며 “출발과 브레이크 모두 손으로 조작하는 게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시내 주행도 금방했다”고 얘기했다.

사실 그가 운전대를 잡은 것은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었다. 집에 돌아온 뒤 안쓰럽게 바라보며 몰래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는 “잠깐이라도 집에 내가 없으면 그나마 좀 화목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짧게는 보름씩, 길면 한 달씩 차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며 “그러면서도 재활은 멈추지 않았다. 혼자 다니다보니 혼자서라도 재활 훈련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시련이 예고 없이 찾아왔듯 기회도 우연히 찾아왔다.

그는 “도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을 때였다. 누가 옆을 지나가면서 ‘운동해보지 않겠냐?’며 명함을 줬다. 휠체어 가방에 넣어뒀다가 2년 만에 꺼내봤는데 배드민턴 회장이었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했는데 흔쾌히 운동하러 나오라고 했다. 이렇게 배드민턴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운전대 대신 배드민턴 라켓을 잡게 됐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욕창이 생겼다. 얼른 나아서 다시 배드민턴을 치려고 했지만 욕창은 지독했다. 그는 무려 1년이나 엎드려 지내야 했다.

다 낫자마자 다시 배드민턴을 시작했지만 또 다시 일주일 만에 욕창이 생겼다. 또 다시 그만두기 싫었던 그는 결국 욕창을 앓으면서 배드민턴을 쳤다.

그는 배드민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면서 불과 2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0년 광주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국제무대 우승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렸지만 대회를 앞두고 상비군으로 내려앉았다.

그는 “시합 경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상비군으로 빠졌다. 승부욕이 강한 성격이다 보니 아시안게임에 갈 수 없다는 좌절감에 슬럼프를 겪었다”며 “그러다 도쿄패럴림픽 종목으로 배드민턴이 채택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보자!’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보여준 불굴의 정신

이동섭 선수가 지난 9월 4일 일본 도쿄 요요기국제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배드민턴 남자 단식(WH 1) 동메달 결정전에서 득점에 성공한 후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동섭 선수가 지난 9월 4일 일본 도쿄 요요기국제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배드민턴 남자 단식(WH 1) 동메달 결정전에서 득점에 성공한 후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상비군 2년, 국가대표 7년’이라는 경험을 쌓은 그는 지난 5월 ‘2021 스페인국제배드민턴대회’에 출전해 남자 단식(WH 1)과 복식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도쿄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그리고 국가대표로서 처음 참가한 도쿄패럴림픽에서 남자 복식 은메달, 남자 단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린 시절부터 착실히 걸어왔던 기술자의 꿈이 불의의 사고로 무너졌지만 기어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모두가 희망이 없다고 해도 내게 필요한 기적을 내가 직접 만들어 가다보면 불가능은 없다”며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다. 나 같은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힘들지만 분명히 좋은 날은 온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주인의 ‘불굴의 정신’을 전 세계에 떨친 그의 손엔 여전히 배드민턴 라켓이 쥐어져있다. 그의 눈은 다가오는 다음 패럴림픽을 정조준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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