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버지와 술을 마셨다.
선천적으로 잘 하질 못해서 피해다녔던 게 술이다. 최근에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 술을 지난달 어느날 아버지와 했는데 이유없이 좋았다. 당시 술에서 좋은 향기가 났던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적당한 술은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잇는 재주가 있다.
그런데 술이 사람을 먹는 경우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
집행유예 기간 아내를 살해한 남편,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낸 소방관, 어머니를 폭행한 경찰관, 행인 앞에서 바지를 내린 50대 남성, 버스에서 모르는 여성의 신체를 추행한 70대까지.
모두 지난달 술에 취한 주취자가 저지른 사건들이다.
편하고 쉽게, 싼값에 기댈 수 있어서일까. 팍팍한 현실을 위로할 친구가 술 뿐이어서 인가.
문제는 절제하지 않고 멈추지 않을 때 일어난다.
술에게 지배당한 주취자의 범행으로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손실은 막대하다.
실제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2013년에만 10조원에 육박했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분석도 있다.
나아가 술은 경제적인 수치로 매길 수 없는 큰 비극을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술을 싼값에 성인이라면 손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청소년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온갖 주류 마케팅이 봇물처럼 터지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과음, 폭음으로 요약되는 우리나라의 술 문화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고, 인명사고 시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이 마련됐어도 술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연말이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후 코로나19가 폭증세다.
제주 식당가는 들뜬 분위기의 송년회 모임이 잦아진 모습이다.
동시에 술에게 먹힌 사람이 비틀거리며 아슬하게 걷는 불안한 모습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정용기 기자 brave@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