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새 작전’의 비밀
‘봉황새 작전’의 비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2.0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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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시인·작가

당신은 1982년 2월 5일을 기억하는가? 잘 모른다면 ‘봉황새 작전’은 알고 있는가? 그것도 모른다면 ‘전두환 경호’ 특전사 등 53명이 한라산 개미등 해발 1060m 지점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을 알지 못하는가? 사망한 사람은 특전대원 47명과 공군 장병 6명이다.

그날, 육군특수전사령부 소속 육군장병과 공군장병들이 갑작스럽게 동원되었다. 이유는 전두환이 다음 날인 2월 6일 제주공항 신활주로 건설 준공식에 참석하자 이에 경호, 일명 ‘봉황새 작전’의 수행을 위한 것으로 C-123 수송기 8대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서울공항은 물론 도작지인 제주공항 역시 눈이 내리는 악천후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계속되는 강설로 서울공항은 모든 항공기 이륙을 통제했고, 제5전술공수비행단조차 이륙이 불가능하다고 보고를 했다. 그럼에도 돌아온 대답은 이륙이다. 문제는 C-123 수송기 중 한 대의 행방이 묘연했다. 결국 다음 날 한라산 해발 1060m 지점 탐라계곡의 작은 골짜기인 개미등 부근에서 추락한 수송기가 발견되었다.

특전사 수색대는 이틀에 걸쳐 마대자루를 동원해 시신을 산 밑으로 옮겼다. 수습이 끝난 후에야 유족들에게 사망 사실을 알리고 국립묘지에 유해를 안치했다. 군부는 언론사를 장악해 보도용 사고 현장 사진까지 빼앗아 갔다.

당시 국방부는 1982년 6월 2일 ‘훈련지역인 제주에 도착하던 중 이상기류로 한라산에 추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상기류에 휘말려 한라산 정상 북방 3.7㎞ 지점에 추락했으며, 자세한 사고원인은 조사 중”이라는 것이다. 그 뒤 사망자 명단이 공개된 적도, 사고 원인이 규명된 적도 없었다. 전두환 경호 임무가 대침투 훈련으로 조작되었다.

당시엔 대간첩 침투작전 훈련을 하다 벌어진 사고로 알려졌다. 훗날, 당시 숨진 장병들은 제주국제공항 확장 준공식 참석과 연두순시를 위해 제주를 찾으려던 전두환 경호를 위해 투입됐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추락사고로 수십 명의 군인이 전사했음에도 불구 전두환은 제주국제공항 개막 행사에 참석했다. 청와대가 전두환이 제주 도착까지 비밀에 부친 것이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도 현장을 통제했고, 작전명도 대통령 경호인 ‘봉황새 작전’에서 ‘동계특별훈련’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당시 특전사령관인 박희도는 사고가 나자 ‘봉황새 작전’을 조작하기 위해 임무 명칭을 ‘동계특별훈련’(대간첩 침투작전)으로 바꾸었다. 장병들이 대간첩 침투작전 훈련 중 순직한 것으로 사건을 처리해 국민과 유가족을 기만했다.

유족들은 그해 12월 서울지검에 전두환과 당시 주영복 국방부 장관, 이희근 공군 참모총장, 박희도 특전사령관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직권남용 등을 죄목으로 고소했지만, 1992년 12월 ‘혐의 없음’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1982년 5월 15일 지은 충혼탑 비문 앞면에는 “네가 죽음으로서/우리가 살고/조국은 지켜지리니/검은 베레는 죽어서 영원히 산다”, 뒷면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젊은 나이에 생명을 바친 육군 특전부대 검은 베레 장병 47명과 공군 장병 6명의 거룩한 희생과 충혼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웠다”는 박희도의 글이 새겨져 있다.

‘봉황새 작전’ 역시 앞으로 진실을 규명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악천후에 따른 공군의 이륙 불가 보고를 무시하고 작전을 강행시킨 사람은 누구인지, 당시 전두환과 청와대가 ‘봉황새 작전’에 대해 관여했는지 등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전두환이 사망함으로써 본인의 입으로 더 이상 사과를 들을 수 없지만 진실을 반드시 규명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을 위한 길일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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