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악처를 만드는가?
누가 악처를 만드는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2.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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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시인·조엽문학회 회장)

인간은 태어날 때 선과 악을 모른다. 

‘중용(中庸)’에서는 “천명을 성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고 해 하늘이 주신 성품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실마리이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의 실마리이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의 실마리이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실마리가 된다고 피력했다. 그러므로 자라온 환경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아가 자라 소녀가 되는데 결손가정인 경우,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받게 된다. 또한 따돌림이나, 차별, 학대를 받으면 성격이 비뚤어진다. 거기다가 우여곡절로 시집을 가서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구하려고 노력함에도 남편이라는 작자가 인격이 개판이면 신혼 초부터 복수의 칼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복수의 칼은 증오심의 응집력이다. 술에 고주망태가 되거나,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거나, 주색잡기 난봉꾼으로 전략하면 아내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세월이 흘러 미모가 넘실거리던 얼굴에 위엄이 번뜩이는 중년 여인이 되었다. 젊어서는 마음이 여렸지만 이제 와서 무엇을 감추랴. ‘중년 여인이여,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복수심을 버려다오.’라는 말, 여러모로 웃긴다고 일축하고는 은밀하게 보복을 실행한다.

교묘한 전개지만, 남편이 부자로 살면 그 자체가 반칙이다. 절대로 출세시켜서는 안 된다. 대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화술도 구역질이 난다. 죄를 뉘우치면서 대성통곡해도 모자랄 인간이 환하게 웃으면 창자가 뒤집힌다. 그러므로 죗값으로 중병 들어서 넉넉히 고통을 받으면서 스스로 뉘우치라는 암시가 서서히 나타난다.

나이가 이순에 이르러 직장에서 물러났거나, 사업을 접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동안 방치했던 아내를 돌보아야만 그간의 미안함을 덮을 수 있다는 속셈으로 아내와 가까이하려고 해도 아내의 마음은 이미 지뢰밭이다. 남편의 가치를 싱크대나 화장실 변기보다도 낮게 대한다. 어쩌다가 마음 다잡고 설거지를 해도 ‘하지 말라’ 일축하고는 다시 씻는다. 변기도 쓰면 뒷조사하고는 정성껏 뚜껑을 닦고 환기통을 돌린다. 이 태도는 분명코 남편을 위생적으로 더럽다는 인식이다. 신혼 초기에는 남편이 먹다 남긴 반찬도 맛있게 잘 먹더니만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로 분리하고 있다.

드디어 착한 아내를 악처를 만든 인물이 늙었다. 현모양처로 살고 싶었는데 악처로 만들었으니 어떤 형태로는 죗값을 치러야 되므로 당연히 용서를 빌어야 한다. 또한 용서해야 한다. 용서하지 말아야만 악처의 자격이 유지되지만 떠돌다가 거지가 되어 다시 집을 찾아왔으니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남자다.

그러나 60세에 정신 차리고 팔십과 구십에 성선설을 배우면서 정답게 살려고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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