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현실 사이
영화와 현실 사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1.2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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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작가

영화는 영화일 뿐. 이 말은 아마도 영화는 허구이니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헷갈린다. 영화인지 실화인지 모를 일들이 하도 많아서 어떤 사건이 터지면 영화랑 비교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예전에 고위층의 비리를 다룬 영화 중에 내부자들이란 영화가 있었다. 대중을 개돼지로 표현한 대사가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나중에는 비슷한 영화와 드라마도 많이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는 분노의 강도가 셌다. ‘저런 천인공노할 나쁜 놈들!’ 그러나 비슷한 작품이 또 나오자 약간 무뎌져서 ‘다 그렇지 뭐’ 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제목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어서 ‘뻔한 스토리군’ 하며 채널을 돌리고 만다. 고위층의 비리를 다룬 이런 유형의 작품은 등장인물이나 스토리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단 등장인물을 보자. 재벌과 정치인이 등장한다. 게다가 고위 공직자, 법조인, 언론인 등 힘 있는 집단의 우두머리들이 나온다. 스토리를 보자면 그들은 한통속이 되어 각종 이권에 끼어든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데 그들이 수족처럼 부릴 조폭도 등장한다. 그래서 정의로운 누군가가 고군분투하며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쪽으로 스토리가 펼쳐지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공통된 법칙이 발생한다. 들통 나지 않고 세상을 감쪽같이 속이려면 비리를 캐려는 자와 비리를 저지른 자가 서로 비밀을 공유하는 것. 그들은 이렇게 아름답고(?) 끈끈한 관계를 맺는다. 일종의 보험이다. 재수가 없어 들통이 난들 크게 걱정할 것 없다. 들어둔 보험이 있으니까. 이런 독백이 대사로 나올 법하다. 콩고물 떡고물은 이렇게 나눠 먹어야 탈이 없는 거야. 

요즘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의혹을 보면 등장인물이 화려하다. 여야를 불문하고 유력한 정치인 이름이 오르내리고 법조인이 등장한다. 언론인도 끼어 있다. 또 누구의 이름이 등장할까 초미의 관심사다. 대장동 의혹 사건을 보아하니 영화 ‘아수라’의 현실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쯤 되면 드라마나 영화는 부패 범죄의 교과서거나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쯤 될 듯하다. 나는 비리를 다룬 영화가 픽션이냐 다큐냐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느끼는 건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대중은 그저 그들의 즐거운 잔칫상에 올라 포만감을 주는 개돼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면 영화나 드라마와 실화가 다른 점은 없을까? 스토리는 비슷할지라도 다른 점은 결말에 있다고 본다. 영화의 결말은 항상 긍정적이다. 부패 카르텔은 마침내 와해되고 정의가 승리하는 쪽이어서 통쾌함을 준다. 만약 그런 통쾌함으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없다면 누가 영화를 보겠는가. 나쁜 놈들이 끝내 잘 먹고 잘 산다면 화가 난 관객이 환불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화의 결말은 어떨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정의가 승리하고 나쁜 놈은 벌을 받는 권선징악으로 명쾌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결말이 지어진다면 제대로 된 세상이겠지만 왠지 그들이 들어둔 보험의 약발은 아주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여당과 야당의 손가락은 서로를 가리킨다. 너네 게이트지? 무슨 소리, 몸통은 너잖아. 서로 그러고 있다.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누가 똥 묻은 개이고 누가 겨 묻은 개인지 지금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의혹은 풀어야 한다.

수억을 투자하고 수천억의 이익을 남기는 마법 뒤에는 헐값에 땅을 팔거나 비싼 값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서민이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서민들이 개미처럼 일하며 덜 먹고 덜 써서 겨우 집 한 칸을 마련한다. 일생 대출금 갚기에 목숨을 거는 서민이나 평생 내 집 마련 꿈조차 꿀 수 없는 이들에겐 분노할 기운조차도 다 빠져버릴 것 같다.

먹고 먹히는 동물의 왕국 같은 세상이지만 누군가의 꿈을 빼앗고 누군가의 인생을 훔친 로또 다발 위에 올라앉은 군상이 이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이니 할 말을 잃게 한다. 문득 나훈아의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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