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공화국’의 수능
‘가짜 공화국’의 수능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1.11.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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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수능)을 망쳤다는 딸이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벌써 10일째라고 했다. 이러다가 혹시 무슨 일이나는 것은 아닌지. 식구 모두가 눈치를 살피며 노심초사 중이라는 후배에게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느 마을 이야기다. 어느 집 아들이 서울 명문대에 합격하자 마을 입구에 ‘장하다 OOO, OO대학교 합격!’이란 플래카드가 걸렸다.

반면 어느 집 아들은 학력고사(수능 전신)를 망쳐 입시에 실패했다. 그런 판에 동네 입구에 그런 플래카드까지 걸리니 도저히 얼굴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 길로 가출했다.

30년 후 가출소년은 건설회사 사장이 되어 고향 마을회관을 지어주었는 데,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 때 (학력고사) 실패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꿈에 나타나 괴롭힐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학력고사가 사실은 ‘가짜’였다는 말을 해주자 그가 크게 웃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중에도 임시 학교를 열었던 나라다. 

북한군에 쫓겨 부산과 제주도밖에 남지 않았던 1951년 2월에도 ‘대학생 징집연기조치’를 발표했다. 임시 수도 부산에서 치러진 대학입시는 국가 존망(存亡)이 왔다갔다하는 와중에서도 입시 열풍을 불렀다. 입시는 진학과 전쟁터 입대(入隊)를 갈랐으니까. 

이런 교육공화국에서 수능은 인생의 빛깔을 가르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한다. 은행 개장시간이 늦어지고 영어듣기 시험 중에는 비행기가 상공에 머문다. 그동안 세상이 몇 번 바뀌었을 만도 한데, 이 국가적 수능 행사는 1994년 이후 매년 되풀이 되고있다.

그리고 그 결과의 희비에 국민이 웃고 울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수능이 인재를 판별하는 기준인가.

▲외국의 학계에서는 우리나라 수능 판별이 ‘가짜’라는 걸 대놓고 지적한다.

인간의 수학능력시험. 즉 인간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선생님으로부터 강의을 듣는 것과 독서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고, 또 하나는 친구나 이웃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전자가 일방향 정보 습득이라면 후자는 쌍방향 정보 습득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수능이 전자인 일방향 정보 습득능력을 평가 대상으로 한다는 데 있다.

5개의 보기에서 정답을 고르는 소위 ‘객관식’ 시험인 수능은 반복적인 문제 풀기와 끝없는 보충학습으로 귀결된다.

상대적으로 쌍방향 정보 습득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저평가된다는 얘기다.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의 역량을 기르고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평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소통력과 감성, 인간·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정서적 영역, 창의와 융합력, 협력에 능한 인재 능력을 가려낼 수 없는 까닭이다.

▲6·25 전쟁이 끝날 무렵. 유엔 한국재건단(UNKRA)은 걸식아동을 위한 빵 공장이라도 만들라고 10만달러(현재가치 500억원 상당)를 한국정부에 지원했다.

필자의 대학 은사는 당시 미군 소속 통역 장교였는데, 어느 날 수업시간 중 ‘미군 장교가 우리에게 경외(敬畏)를 표한 일’이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당시 UNKRA측의 빵 공장 제안에 한국정부는 단호히 거부했다. “우리 아이들은 배가 고프기보단 지식에 굶주려 있다”고 교과서 공장을 만들어 달라고 주장했다.

UNKRA의 미군 장교는 이런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며 “한국은 반드시 일어설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국민이 배를 졸라맨 대가로 자원 없는 이 나라가 세계의 인재(人才)국가로 우뚝 섰다.

그러나 지금은 ‘가짜 공화국’이다. 

‘가짜’가 어디 수능뿐인가. 온갖 세상이 다 ‘가짜’판이다.

이런 수능으로 우리 후손들이 다시 세계 앞에 일어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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