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수행은 용서”…부처 참뜻 새기며 望鄕의 기도
“가장 큰 수행은 용서”…부처 참뜻 새기며 望鄕의 기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1.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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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북인도를 가다(17)
다람살라에 사는 티벳 난민들은 매일 아침 멕레오드 간지에 있는 남걀 사원을 찾아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를 염원하며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사진은 마니차(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를 돌리며 기도를 올리는 티벳 난민들.
다람살라에 사는 티벳 난민들은 매일 아침 멕레오드 간지에 있는 남걀 사원을 찾아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를 염원하며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사진은 마니차(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를 돌리며 기도를 올리는 티벳 난민들.

■ 달라이 라마, 그는 어떤 사람인가
“용서는 값싼 것이 아니다. 그리고 화해도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용서할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문을 열 수 있다.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 가장 큰 수행은 용서다.”
달라이 라마가 법문에서 한 말입니다.

14대 달라이 라마, 그는 어떤 사람일까. 티벳이 중국에 점령당하자 인도 다람살라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세계 각국에 티벳 독립을 호소한 티벳 종교·정치의 상징적 존재입니다.

그는 1935년 현재 중국 칭하이성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고, 본래 이름은 라모 톤둡입니다. 3살 때 라싸의 포탈라궁에서 파견된 고승들에 의해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인정받아 5살 때 포탈라궁으로 들어갔는데 이때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전 세계가 혼란스런 시기였습니다.

전쟁이 종전되고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자 1949년 중국인민해방군이 티벳을 침공합니다. 당시 티벳 군대는 기병대와 청나라 시절 쓰던 대포뿐이라 상대가 될 수가 없어 거의 무혈입성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그의 통치권을 인정하되 사회주의 개혁에 매진한다는 중국의 온화한 정책에 합의하고 중화인민공화국 티벳자치구 주석 등을 역임하며 일정 부분 협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여기는 중국 공산당과 종교를 기본 정책으로 믿는 티벳은 섞일 수가 없어 대립이 잦아지면서 그의 실각·숙청설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1959년 티벳 사람들은 중국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켰으나 중국의 총 칼 앞에 참혹한 실패를 당했고, 이는 달라이 라마를 제거할 수 있는 명분이 됐습니다. 궁지에 몰린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탈출을 감행했고, 중국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인도 정부는 지금의 다람살라 지역을 망명정부에 제공했습니다.

이후 달라이 라마는 지금까지 비폭력을 기치로 중국의 폭력에 대항하며 전 세계에 평화를 호소하면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조국을 짓밟고 자기 민족을 학살한 중국조차 용서한다며 이 시대의 진정한 세계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이 바로 달라이 라마입니다.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의 중심 시가지 모습.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의 중심 시가지 모습.

■ 티벳 난민들 피눈물 나는 투쟁의 기록
‘오늘은 혹시나’ 하고 남걀 사원을 찾아 기웃거려 봤지만, 결국 발길을 돌려 티벳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티벳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빼앗긴 조국에 대한 기록과 중국이 지배한 티벳에서, 특히 종교 탄압 등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조국을 찾기 위한 티벳 사람들의 피눈물 나는 투쟁의 기록들을 마주하니 “아~티벳” 하고 작은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희귀한 사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라싸로 진군하는 중국군들이 내건 마오쩌둥 초상화 앞에서 억지 춤을 추는 티벳 사람들 모습,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탈출하는 14대 달라이 라마의 젊은 시절 모습 등으로 정말 생생한 기록 사진입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이런 사진들을 보며 ‘이 사진이 없었다면 티벳의 현실을 어떻게 알렸을까?’ 하고 다시 한 번 사진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남걀 사원과 망명정부, 박물관 등을 둘러본 뒤 박수 폭포를 찾아가니 모처럼 한가한 관광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다람살라 동쪽에 있는 작은 산간마을로 천천히 걸어가며 산비탈에 건물들이 오밀조밀 들어선 다람살라의 여러 모습과 또 티벳 난민들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했지만, 지나는 사람들은 관광객뿐입니다.

이 마을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지 관광 상품 판매점과 음식점이 즐비하고, 마을 가운데 있는 커다란 노천목욕탕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산 중턱에 있는 폭포를 멀리서 바라보고 히말라야 산맥이 보인다는 산 능선을 힘들게 올랐으나 안개가 자욱해 가끔 스치는 산 능선만 보일 뿐 눈 덮인 산은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2박 3일, 아주 짧은 시간 티벳의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를 보면서 나라를 빼앗긴 티벳 사람들의 삶과 나라를 찾기 위한 그들의 피눈물 나는 염원의 기도에 생각해 봤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중국의 압박으로 여러 나라가 티벳 망명정부와 거리를 두게 되는 현실 속에서도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 가장 큰 수행은 용서다”라는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기치로 중국의 폭력에 외롭게 대항하기 위해 온몸을 바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조국을 되찾는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깨달은 자, 그 누구도 부처다’라는 만상일여 만인평등의 민주주의를 설파한 부처의 참뜻을 추구하는 그들이 진정한 부처가 아닐까.

이제 세 번째 인도 여행을 마치고 야간 버스를 타고 델리를 거쳐 그리운 가족이 있는 나의 조국으로 갑니다. 가서 머물 수 있는 조국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번 여행을 통해 마음 깊숙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다람살라 멕레오드 간지 동쪽의 작은 산간마을은 박수 폭포와 수영장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다람살라 멕레오드 간지 동쪽의 작은 산간마을은 박수 폭포와 수영장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 연재 마칩니다…애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7년 7월부터 연재한 ‘서재철의 오지 기행‘은 이번 회를 끝으로 마무리합니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간 해외 오지 취재를 나갈 수 없었고, 몇 년 전 자택에 화재가 발생해 그간 취재했던 몇몇 나라에 대한 사진 등 기록들이 소실돼 더는 연재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의 졸고(拙稿)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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