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배
떠나가는 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1.2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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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자 수필가

한천 계곡을 끼고 있는 옴팡진 곳에 4층 건물이 앉아 있다. 기대를 안고 안으로 들어섰다. 직원이 동선을 알려 주어 어색하지는 않았다. 

한 계단 내려선 공간엔 기획전시를 하는 중이었다. 아직 방문객은 없는 모양이다. 조용한 가운데 익숙한 가곡이 반복되고 있다. 한때 즐겨 불렀던 ‘떠나가는 배’다. 어찌도 이렇게 애절하게 표현했을까. 양중해 님의 시에 변훈 님이 곡을 붙여 가곡 100선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노래다. 헤어져야만 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바다 위에서 출렁이고 있는 듯하다. 슬픔의 배경까지 떠올리니 더욱 가슴이 먹먹해진다. 비극의 시대를 지나면서도 멈추지 않고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들의 고통도 보이는 듯하다. 

상설전시실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 장비를 들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어 방해가 될까 봐 계단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난 전시실, 조용해진 가운데 홀로 주인공이다. 이것저것 화면을 터치해보았다. 조선 시대 제주에 왔던 사람들의 한시를 비롯하여 제주의 무속에서 전해지는 신들의 이야기, 당대에 많이 듣고 있는 4.3 관련 작품 등 연대별로 패널과 키오스크 검색 시스템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민속자연사박물관에 걸려있는 김치 판관의 한시 ‘登絶頂’이 눈에 띈다. 우연히 아는 친구를 길에서 만난 듯 반갑다. 어려운 한자를 읽어내지 못한다 해도 번역이 같이 붙여져 있어서 감상하기 편리하다.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서 애쓴 흔적이 보인다. 다양한 내용이 계속 담기게 될 것이고,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게 될 대용량의 보물창고로써 활용되길 기대해본다. 

‘가치는 만들어 가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문학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고 정체성을 키워나갈 때 삶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 문화탐방을 하러 갔을 때 그 지역의 문학관을 들어가 본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그때마다 제주도에 문학관이 없다는 게 아쉽기만 했었다. 제주도야말로 어느 곳보다 문학 활동이 활발한 곳이 아니던가. 

‘제주 문학관’이라는 새로운 명소가 탄생하였다. 참 다행한 일이다. 역사 속에 묻혔던 선인들의 작품과 근‧현대의 아픈 문학도 실었다. 제주도가 문학 1번지로 무한한 발전이 있었으면 하는 염원도 실었다.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마냥 슬퍼해야만 했던 그 시대도 실었다. 문학을 싣고 세계를 향해, 미래를 향해 돛을 올린 희망의 배가 되었다. 얼마나 멋지고 뿌듯한 일인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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