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 위해 온 힘…장애인 삶의 터전 일구다
‘함께하는 삶’ 위해 온 힘…장애인 삶의 터전 일구다
  • 정용기 기자
  • 승인 2021.11.24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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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주&제주인] 9. 최영열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 이사장

 

지난 19일 제주시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 사무실에서 만난 최영열 이사장이 미소를 짓고 있다. 정용기 기자.
지난 19일 제주시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 사무실에서 만난 최영열 이사장이 미소를 짓고 있다. 정용기 기자.

“어떤 엄마가 돼야 할까?”. 두 아이의 엄마는 생각했다. 회사 월급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의 인생. 처음부터 그의 옷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 깊게 고민했다. 그리고 실천했다. 최영열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 이사장(51)은 어려운 사람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녀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또 자녀로부터 “엄마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란 얘길 듣고 싶었다. 사회복지가, 사회적 경제 기업가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엄마 최영열을 보여주려 했다. 이처럼 그는 가족이라는 사회공동체 속에서 삶을 계획했다. 지금도 최 이사장은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삶을 실현하는 제주인으로 살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 또 고민
아직은 척박했던 1970년 제주시의 평범한 가정에서 네 남매 중 셋째로 첫 울음을 터트린 최 이사장은 어려서부터 제주를 떠나기 싫어했다. 그는 방학 때마다 해녀인 할머니가 있는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바다로 달려가 살곤했다.

할머니가 따온 거북손을 좋아했고, 따뜻한 해질녘 바다를 보면서 조금씩 천천히 삶의 방향을 고민했다. 그는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고 싶었다. 변화의 주체는 아니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갈망했다.

법학을 전공한 대학생 시절엔 학생운동에 나서며 그 역할을 찾고자 했다. 사회문제를 공론의 장에 올리는데 일조하며, 걸어갈 길을 모색했다. 고민은 길어졌다. 그러는 와중에 사기업의 직장인이 됐고, 가정도 꾸렸다. 그리고 엄마가 됐다.

둘째 자녀를 품에 안은 2000년 최 이사장은 문득 생각했다. “어떤 엄마가 돼아 하는가”,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그는 산업정보대학에서 사회복지 전공을 시작하며, 사회복지사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갈망했던 역할은 사회복지 현장에 있었다. 복지관 봉사활동,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 실습을 통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사회복지 현장임을 깨달았다.

이윽고 최 이사장은 2003년 사회복지시설인 ‘제주애덕의 집’ 첫 번째 직원으로 입사하며, 본격적인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넘어져도 지치진 않는다”...그의 옆을 지킨 사람들
“제 강점은 건강이에요. 제가 원하는 일을 하니까, 힘들어도 지치지 않아요.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주애덕의 집에서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시작한 최 이사장은 모든 걸 처음 경험하며 일에 익숙해졌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배운 것들을 하나둘 현장 직무에 녹여냈고, 배워갔다. 가가호호 가정방문을 통해 시설에 입소할 장애인을 면담하기도 했다. 장애인들이 경험할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렇게 3년 정도가 흘렀을까. 최 이사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시설에서 보내는 장애인들이 안타까웠다. 또 지역사회로 나가서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에 최 이사장은 제주애덕의 집에서 직업재활시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일배움터’가 2005년 탄생했다. 그는 무려 10년 동안 원장으로 일배움터에서 다양한 상품을 만들며 장애인들과 함께했다.

일배움터는 도자기에서 도자기 화분 등으로 생산 품목을 확대했다. 상품의 질도 꾸준히 개선시켰다. 일배움터에서 장애인들이 만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도자기 화분’은 큰 인기를 끌었다. 사업 초반 500만원이던 연매출은 짧은 기간에 1억원을 넘어섰다. 최 이사장은 일자리 확대를 위해 브랜드도 출시했다.

제주도청 민원실 인근에 있는 플라워 카페 ‘플로베’(flove)가 대표적이다. 최 이사장은 장애인 일자리라는 단순한 개념에 그칠 수 있었던 플라워 카페에 정체성을 입혔다. 사랑(love)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국가 슬로베니아(slovenia)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렇게 꽃(flower)과 사랑(love)을 합친 플로베를 창업했다.

그는 중요한 도전과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을 도왔던 고마운 사람을 잊지 않았다. “항상 좋은 사람이 함께했죠. 사람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 생각과 선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사회복지시설 원장님부터, 수녀, 교수 등 다양한 장애인 복지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듣고 저만의 장애인 복지 패러다임을 다져갔습니다”
 

다음 달부터 제주시 아라동에서 운영될 예정인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의 '희망나래 복합공간' 전경. 사진=희망나래 제공.
다음 달부터 제주시 아라동에서 운영될 예정인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의 '희망나래 복합공간' 전경. 사진=희망나래 제공.

▲‘희망나래’의 시작..“제주 경쟁력 키울 제주인들 많아지길”
10년 동안 모든 걸 쏟아 부었던 일배움터에서의 삶을 정리한 2015년, 최 이사장은 잠시 길을 잃었다.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10년의 열정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한걸까. 사회복지계 다양한 인사들이 최 이사장을 먼저 찾았다.

최 이사장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전화 한 통이 있었다. “이제 최영열 자신이 중심이 돼 사회복지 비전을 실현해야 할 때다. 이렇게 떠나면 안 된다”는 한 사회복지 관계 공무원의 통화였다.

그는 그렇게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를 시작했다. 희망나래는 장애인들의 탄생과 성장, 정착까지 전반적인 삶을 협동조합 조합원의 힘으로 해결하자며 탄생했다.

현재 희망나래는 주간보호시설, 공동생활가정, 통합돌봄센터, 직업재활시설까지 외연을 키운 장애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서 전례 없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다음 달 제주시 아라동에서 운영을 시작하는 ‘희망나래 복합공간’은 조합원 100여 명의 출자를 기반으로 건립기금 모금에 참여한 후원자의 지원이 더해진 ‘시민자산화’ 모델로 완성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희망나래 복합공간에선 중증발달장애인 교육, 발달장애인 맞춤형 일자리 마련을 위한 작업장 등이 운영된다.

최 이사장은 “희망나래는 지역사회의 관심과 도움 속에 빠르게 성장해 왔다. 희망나래도, 고향 제주도 저의 삶 그 자체다. 미래를 이끌 제주인도 제주의 가치,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정진해 줬으면 좋겠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노력하고 계속 움직인다면 이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길 것”이라고 미소지었다.

정용기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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