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이주해 와서 헌책방을 연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 책방에도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제일 큰 건 사용하는 공간과 보유한 책의 양이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두 창고로 사용하는 처음 마련했던 노형동의 지하 공간과 그 옆에 추가했던 한 칸, 4년 전에 새로 마련한 지금의 삼도동의 지하 서점과 2층의 전시장…. 다 늘어나는 책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라지만 늘어나는 공간만큼 그에 따라서 경상비도 늘어가는 게 당면한 제일 큰 문제다. 그러다 보니 두 달 전에 냈어야 할 연세를 한 번에 내지 못하고 나누어 내다가 엊그제서야 완납하는 불상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또 생겼다.
이렇게 발등의 불이고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이라서 늘 마음을 비워야지 하면서도 막상 책을 인수해 가라는 연락을 받으면 공간이야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일단 차에 싣고 본다. 우리 같은 헌책방이 포기하면 바로 폐지 처리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주 고질병이다.
이렇듯 공간 문제 때문에 한 걱정을 하면서도 장서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들의 연락을 받으면 역시나 버선발로 달려가게 된다. 얼마 전의 일이다. 몇 해 전에 우리 책방 소장 도서전을 열어 주셨던 저지에 있는 북갤러리 파파사이트에서 장서를 정리한다는 연락을 주셨다. 당연히 좋은 책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방문을 해보니 역시나 박물관 등의 전시도록 등 귀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밀린 연세 문제로 심란할 때라 소중한 책들을 만나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그에 상응하는 매입가를 어느 정도 산정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나의 속마음이라도 읽으셨는지 대표님이 팔 생각은 전혀 없으니 그냥 가져가서 꼭 필요한 분들이 잘 쓰셨으면 좋겠다신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그냥 책 수집가가 아니고 헌책방을 업으로 하는지라 그럼 돈 대신 다른 것으로라도 드리겠다고 하고 모두 인수해 왔다. 오늘은 그 책들 가운데 우리 제주와 관련된 한 권을 소개해 보련다.
그 책이 바로 사진작가 배병우(裵炳雨, 1950~ )의 사진집 ‘제주도(濟州島)’(일본 PIE, 2014)다. 경주의 ‘소나무’ 시리즈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는 29살 때부터 제주도의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 바람과 돌 등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었고 그 가운데 엄선된 작품을 수록한 게 이 작품집이다. 작가를 대표하는 소나무는 32살 때부터 접했다고 하니 그보다 먼저 주목한 작품 주제가 우리 제주도였던 셈이다. 속지에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를 그린 작가 친필 드로잉도 수록되어 있다.
한국의 정서를 상징하는 자연을 사진으로 표현하면서 스스로를 ‘Photo painter(사진 화가)’(최재천)라고 했던 작가는 오랫동안 찍어왔지만 ‘여전히 제주가 신비롭다’면서 그 ‘수천가지 표정은 평생을 찍어도 다 담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과거의 불미스러운 문제로 인해 얼마 전 도립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이 철거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던 작가지만 모쪼록 지금부터라도 잘 수신(修身)하셔서 ‘제주가 드러낸 찰나의 표정을 포착할 때마다 우주의 비밀을 엿보는 듯한 신성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 제주에 갈 것’이라는 약속은 꼭 지키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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