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여라, 난민의 오체투지
간절하여라, 난민의 오체투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1.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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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북인도를 가다(16)
다람살라 윗마을 멕레오드 간지에 있는 남걀 사원을 찾았다. 촛불을 밝히고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를 염원하며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티벳 난민의 모습이 참으로 애잔하다.
다람살라 윗마을 멕레오드 간지에 있는 남걀 사원을 찾았다. 촛불을 밝히고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를 염원하며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티벳 난민의 모습이 참으로 애잔하다.

■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
세 번째 인도 여행 23일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북인도 답사를 마치기 위해 오후 늦게 다람살라에 도착했습니다.

다람살라는 지형에 의해 아랫마을과 윗마을, 두 구역으로 나뉘었습니다. 아랫마을은 주로 인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윗마을은 티벳 망명정부가 있어 주로 티벳 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윗마을이 다르게는 멕레오드 간지(McLeod Ganj)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산비탈을 빙글빙글 돌아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날씨까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이 어두침침한 것이 티벳 망명정부의 슬픔이 투영된 듯한 느낌입니다.

버스는 산 중턱까지밖에 갈 수 없어 숙소가 있는 곳까지 무거운 짐을 끌고 한참 올라가는 고행 아닌 고행을 하며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산동네라서 경사가 무척 심해 사이클 릭샤(인력거) 같은 인력을 이용한 교통수단도 없고, 택시를 대절해야 하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가깝다는 말에 그냥 걷다 보니 고생을 좀 했습니다. 좁은 시가지는 세계 각 지역에서 몰려온 티벳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려 정신이 없습니다. 

한바탕 소란 끝에 숙소에 도착, 늦은 저녁을 마치고 이제 인도 여행도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뭔가 아쉬움이 남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아그라와 바라나시, 그리고 마날리에서 사르추를 거쳐 레로 오는 험한 산길을 걷지는 않았지만 걷는 것보다 더 위험한 모험을 하며 ‘시체들의 고개’라고 불리는 로탕 패스 넘었습니다. 아름다운 판공호수를 마주했고 ‘서남아시아의 화약고’라는 카르길과 전쟁 위험 지역인 스리나가르를 거쳐 이곳 다람살라에 이르렀습니다. 험한 여정을 무탈하게(아직 며칠 남았으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레에서 이한정씨가 한 아기 엄마에게 베푼 큰 보시(報施) 덕분이란 이야기에는 큰 웃음이 쏟아졌습니다.

산악지역이라 그런지 공기가 맑아 상쾌한 아침을 맞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람살라의 속살을 찾아 돌아다녀 볼 작정으로 카메라를 짊어지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맨 먼저 찾아갈 곳은 티벳 망명정부와 관련된 종교, 정치 의식을 집행하는 남걀 사원입니다. 새벽인데도 사원 뜰에는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티벳 난민들이 모여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를 기원하며 간절한 기도를 올립니다. 동·서 티벳 현지에서도 오체투지를 하며 기도를 올리던 티벳 사람들을 본 적이 있지만 이곳에서 만난 티벳 난민들의 기도 열기가 더 뜨거운 듯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비폭력 투쟁으로 조국을 되찾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도를 올리는 그 모습이 마치 처절한 몸부림처럼 느껴졌습니다.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멕레오드 간지의 전경. 산등성이의 여러 건물 가운데 티벳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요한 직할 사원인 남걀 사원이 있다.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멕레오드 간지의 전경. 산등성이의 여러 건물 가운데 티벳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요한 직할 사원인 남걀 사원이 있다.

남걀 사원의 아침, 티벳 사람들뿐 아니라 티벳을 사랑하는 외국인들, 티벳 불교를 연구하려고 세계 각지에서 온 학자와 승려들도 분주히 움직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람살라를 찾은 관광객들이 사원으로 밀려들고 어떤 이들은 ‘혹시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오랜 시간을 머무르기도 합니다. 저도 달라이 라마가 지나가는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서성거리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허탕이었습니다. 

사원 안뜰에 펄럭이는 티벳을 상징하는 깃발은 여기가 중국 땅도, 인도 땅도 아닌 티벳 망명정부의 땅이라는 것을 말해줘 남의 나라 현실이지만 가슴이 애잔해집니다.

오체투지를 하던 티벳 사람들이 잠시 쉬고 있을 때 승려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서로 마주앉자 ‘즉문즉답’을 하기 시작합니다. 2년 전 서티벳을 찾았을 때 세라 사원에서 겔룩파 승려들이 강원(講院)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즉문즉답’을 하는 것을 처음 봤었는데 이곳에서도 이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 빙그레 미소 지은 불상
남걀 사원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양옆으로 티벳 전통 불교 관련 의류, 장신구 등을 파는 가게가 즐비합니다. 한 가게에 들어섰는데 ‘티벳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거든 꼭 티벳 독립을 염원하는 사진엽서를 사세요’라는 한 여행자 글이 기억나 엽서 몇 장을 뽑아들다가 오래된 듯한 불상(佛像)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때가 잔뜩 묻은 빙그레 웃는 표정의 작은 불상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불상을 집어들자 여주인이 다가와 뭐라고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 쳐다봤더니 그녀는 종이를 꺼내 동굴 모양을 그리고는 동굴에서 수행하던 승려가 모셨던 불상이라고 설명합니다. 가격을 묻는 걸 머뭇거리자 여주인이 먼저 알려줍니다. “좀 깎아주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그녀는 뭔가를 꺼내 들고는 “이것까지 함께 가져가라”고 합니다. 여주인이 건넨 건 시커먼 작은 주머니인데 그 안에는 가죽에 붙인 작은 불상이 들어 있었습니다. 동굴에서 수행하던 승려가 함께 지녔던 불상이랍니다. 단순한 토산품은 아닌 듯해 얼른 배낭 깊숙이 모셨습니다. 집으로 가져온 그 불상은 독실한 불자이신 저의 장모님이 정성껏 모시고 있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티벳 난민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티벳 난민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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