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본질-도민 운명 성찰...문단 큰 별 넘어 정신적 지주
제주 본질-도민 운명 성찰...문단 큰 별 넘어 정신적 지주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1.11.18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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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8 양중해 시인
해방 후 피란 온 박목월.고은 시인 등과 교류, 1959년 등단 제주문학 토대 마련
제주예총-문화원 문화예술계 기반 다져... "유작 등 제주문학관 기증 고민 해야"
제주대 교수 시절 양중해 시인.  <양중해 시인 장남 양익씨 제공>

 

한 시인이 있었다.

시인은 제주도민의 운명적인 삶을 노래했다.

그는 시작(詩作)을 넘어 해방 이후 제주 문화예술을 개척하고 기반을 다졌다.

문학 박사였던 시인은 교사와 교수, 문화예술계 어른을 넘어 도민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고() 양중해 시인으로, 호는 현곡(玄谷)이다. 고인의 시에 작곡가인 고() 변훈이 곡을 붙인 떠나가는 배는 교과서에 실리는 등 국민 가곡으로 널리 사랑받았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가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배야/ 야속해라/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

199912떠나가는 배시비(詩碑)가 제주시 탑동 해변공연장 잔디밭에 세워졌다.

 

양중해 시인(왼쪽)과 박목월(가운데)‧고은 시인(오른쪽).  <양중해 시인 장남 양익씨 제공>

 

제주의 본질도민의 운명 시로 압축

양중해는 1927년 제주시 화북동(거로)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건국대 대학원, 대만 중화학술원 등을 졸업했다.

양중해는 1959년 사상계에 그늘’, 현대문학에 슬픈 천사가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그는 작품 수로는 과작(寡作)의 작가였다. 양중해가 남긴 시집은 파도’(1963신조문화사)한라별곡’(1992제주문화), ‘수평선’(2004정은문화사) 세 권에 불과하다.

도민의 태생적인 정서를 형상화한 그의 시는 울림이 깊다. 제주의 본질과 도민의 운명이 시어(詩語)를 관통한다. 제주를 향한 고뇌와 제주다움에 대한 고민, 문제의식이 깃들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수평선 안에서 산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한라산 발치라면 어디에라도 터를 잡고/ 수평선을 등지면 한라산/ 한라산을 등지면 수평선/ 그 누구도/ 길고 짧은 한 평생을/ 수평선에 갇히어/ 수평선 안에서 살다가/ 수평선 안에서 삶을 마친다.’

양중해가 2004년 발표한 수평선전문이다.

제주 출신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수평선이라고 하면 우선 연상되는 작가가 변시지 화백이라며 양 시인은 1927년생이고 변 화백은 1926년생이다. 두 사람이 동시대를 살아가며 제주를 바라본 인식의 영역이 닮은 점이 있었던 때문일까. 양 시인의 수평선시를 보면 변 화백의 그림에 대한 해설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친밀하다고 지적했다.

좌 시인의 평론은 계속된다.

“‘수평선을 등지면 한라산에서 수평선은 인간적 한계 또는 운명과 닿아있다. 이 경우 한라산은 위로와 안식의 공간이 되는 셈이다. 반면 한라산을 등지면 수평선에서 한라산은 시련과 고난의 공간이 되고 수평선은 이상적 세계, 동경의 세계가 된다. 그러니까 수평선은 단절과 연결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제주를 떠난 뭍으로의 본토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제주인에게 수평선 너머의 공간은 이어도이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이어온 제주인들의 삶과 정서를 이토록 압축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서예 작품 활동에 몰입 중인 양중해 시인.  <양중해 시인 장남 양익씨 제공>

 

제주 문화예술의 기반을 다지다

양중해는 제주로 피란 온 국내 주요 작가와 교류하며 제주문학의 싹을 틔웠다.

해방 이후 제주에 머물던 소설가 계용묵(1904~1961)이 대표적이다.

양중해 등 도내 20대 문학청년들은 계용묵의 지도를 받으며 종합교양지 신문화를 창간했다. 양중해는 도내 최초의 시 동인지 비자림도 발간하는 등 제주문단의 초석을 놓았다.

양중해는 시인 박목월(1916~1978)과도 인연을 쌓았다. 1950년대 중반 유부남이던 박목월은 여대생과 제주에서 사랑의 도피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떠나가는 배는 둘의 이별 장면을 시로 읊은 것이란 양중해의 생전 회고도 널리 알려졌다. 피난민을 싣고 떠나는 배를 바라보며 인간이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별리의 정서를 노래한 작품임은 물론이다. ‘떠나가는 배를 지을 당시 양중해는 제주제일중 국어교사였고 작곡가 변훈은 같은 학교 음악교사였다.

특히 그는 제주문단의 큰 어른을 넘어 지역 문인협회와 예총, 문화원 등을 탄생시키는 등 제주 문화예술계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이력에 유독 초대가 많은 이유다.

양중해는 1962년 한국문인협회 및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제주도지부를 각각 창설해 초대 지부장을 맡았고 1995년과 2006년 제주문화원과 제주특별자치도문화원연합회 설립 당시 초대 회장을 지냈다. 제주대 교수 시절 초대 인문대학장사범대학장대학원장박물관장을 지냈다.

제주도문화재위원장과 한국언어문학회장, 제주연묵회장 등도 그의 활동 영역이었다.

양중해는 제주도 등 지자체와 상징 인물, 학교 관련 노랫말도 지었다. ‘제주도의 노래’, ‘제주시의 노래’, ‘아름다운 서귀포’, ‘남제주군의 노래’, ‘북제주군의 노래’, ‘김만덕의 노래를 비롯해 제주산업정보대학교가등 상당수 도내 초··고교, 대학교 교가를 그가 작사했다.

2007년 그의 별세 당시 장례식도 도내 최초 제주도문화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

제주문화원과 제주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과 사무국장으로 양중해를 모셨던 현태용 수필가(65)선생은 문학계의 큰 별을 넘어 도민의 정신적 지주였다제주인의 운명과 정서를 시로 표현했고 제주 문화예술의 토대를 닦았다고 강조했다.

현 작가는 성냄이나 미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분이라며 혹시 언짢은 상황이 되면 얼굴이 먼저 불거지니 겸양의 덕을 갖췄고 바쁜 것 하나 없어 거동이 점잖으셨다. 옛 선비의 성품 그대로였다고 전했다.

2014년 관광지 카멜리아 힐에 양중해 기념관이 조성됐다. 시인의 작품과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이와 관련 현 작가는 방문객들이 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원활하게 운영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유족과 카멜리아 힐 회장이 서로 상의해서 선생의 작품을 최근 개관한 제주문학관에 기증하는 방향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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