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샘물
기억의 샘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1.1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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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 시인

얼마 전에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 만나면 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가지는 지인들이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작은 해프닝으로 한바탕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모임의 날짜와 시간, 장소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디서 헷갈린 것인지 우리의 기억은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쩍 건망증이 심해졌다. 듣고 나면 금방 잊는 경우가 허다하다. 메모와 알람을 활용하며 의도적인 노력으로 방법을 찾고 있지만, 끊임없이 생성되는 망각, 건망증의 징후들이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어떤 이들은 출산이나 수술 등 전신마취를 한 두 번 경험한 사람들은 기억력은 포기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씁쓸하지만 반박할 별다른 근거도 없다.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면서 노인들의 평균연령도 높아졌다. 당연히 치매는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인 화두다. 가장 두려워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앓고 싶지 않은 질병이다. 살면서 실생활에 활용해야 할 기억 체계는 점점 무뎌져 가고 잠자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은 물밀듯 다가선다. 치매 아닌가, 지레 겁먹고 건강 염려증에 괜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아르헨티나계 브라질 과학자로 학습과 기억을 연구하는 신경생물학 분야 선구자인 이반 안토니오 이스쿠이에르두는 ‘망각의 기술’에서 기억훈련은 시냅스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최고의 기억 훈련법은 ‘읽기’라고 했다. 기억과 망각은 동의어이고 기억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읽고 또 읽기, 즉 독서가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듯 기억력이 점점 감퇴하면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공포감이 밀려든다. 그러나 망각은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빠르게 사라지고 까먹는 번잡한 일상을 경계하되 기억이라는 샘물에서 차분하게 퍼 올리는 맑고 밝은 생각으로 여유로움을 가져보도록 노력할 일이다.

돌아가신 서정주 시인의 일화는 유명하다. 기억력 감퇴를 막아보기 위해 매일 한두 시간씩 세계지도를 앞에 놓고 각 나라의 수도와 산의 이름을 몇백 개씩 외웠다고 한다.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맑은 정신을 꾸준히 유지해야 좋은 시를 오랫동안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를 쓰는 나로서는 시인이기에 더욱 가슴에 와닿는 감동으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너그럽고 느긋하게 가지려고 노력하자. 일상의 균형을 잡아가며 간소하고 단순하게 생활하기로 하자. 빡빡하고 분주한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활용하자. 욕심보다는 베풂을, 집착보다는 내려놓음의 마음자리를 넓혀가자. 괜한 핑계를 만들며 투덜거리지 말고 원인도 결과도 받아들이자. 가을 단풍을 닮은 붉은 그리움과 풍성한 추억을 쌓아가면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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