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과 자연 소리...대금으로 이은 제주 국악 계보
한(恨)과 자연 소리...대금으로 이은 제주 국악 계보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1.11.10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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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 신은숙, 이동건(7)
1990년대 대금, 가야금 보급 기여한 신은숙 선생
단기간 전국대회에서 유의미한 성적 거둔 이동건군
신은숙 선생(좌)과 이동건군.

끊길 듯 말 듯 이어지는 한(恨)의 소리. 대나무 악기 구멍 사이로 바람이 불며 자연(새, 비, 바람)의 소리를 흉내 내 인간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운지법부터 호흡법, 연주법까지 까다로워 국악 악기 중 가장 어렵다는 ‘대금’이다.

제주에서 대금으로 국악 계보를 잇는 이들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45호 이생강류 대금산조 이수자로 도내 1호 국악원을 연 소연(韶然) 신은숙 선생과 대금 연주를 정식으로 시작한지 4개월 반 만에 올해 제12회 환경‧담양소리축제 전국국악대전에서 고등부(관악)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동건군(함덕고 음악과‧1년)이다.

본지는 지난 6일 제주시 소재 신은숙 선생 자택에서 대금 연주에 한창이던 이들을 만났다.

1990년대 제주에 대금, 가야금 연주를 보급하는데 기여한 제주 출신 신은숙 선생은 14세부터 제주에서 각 다른 시기에 머물던 대금 연주자 김효채 선생과 김환수 선생을 사사해 대금을 접했다.

이들 모두 중요무형문화재 45호 보유자 이생강 명인의 제자였고, 신 선생은 17세부터 이생강류 대금 산조를 명인에게 직접 배우고자 비행기를 타고 가 가르침을 받았다.

성인이 돼서는 대금을 전공, 가야금을 부전공하며 실력을 쌓았고, 1999년 이생강류 대금산조 이수증을 받았다.

신 선생은 같은 해 국악 불모지였던 고향 제주로 내려와 도내 1호 국악원인 소연국악원을 열어, 현재까지 대금과 가야금으로 총 400~500명의 제자들(어린이, 학생, 성인 포함)을 양성해왔다.

아울러 도내 대금연주자로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등 서양악기와의 크로스오버 공연을 지속하며 국악 저변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제주민요 대금악보집’을 비롯한 다양한 제주 정신이 담긴 국악 악보집 제작 및 보급에도 힘써왔다.

신 선생은 “국악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게 판소리며 그 다음이 대금이라고 한다”며 “가야금처럼 줄에 손을 댄다고 바로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잡는 법부터 부는 법까지 까다로워 오랜 시간이 지나야 소리가 난다. 이에 대금을 다루려면 입술 모양도 두텁게 타고 나야 하는 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던 신 선생에게 지난 6월 대금을 배우고 싶다는 유망주가 찾아왔다. 이동건군이다.

10세 때 부모의 고향 제주로 이사온 이군은 7세부터 용돈을 모아 동네 문방구에서 단소를 사서 매일 갖고 다니며 연습했다.

8세에는 교내 사물놀이부에 들어가 장구를 치며 국악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중학교 2학년때 대금이란 악기를 알게 돼 공부하고 싶었으나 스승을 찾지 못해 독학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군은 당시 영주고등학교 방송영상과 재학생으로 정식으로 대금을 배운 적이 없고, 편입 시험을 2개월 남짓 남겨두고 함덕고 음악과로 편입을 원하고 있었다.

신 선생은 촉박한 준비기간과 대금이 어려운 악기라는 걸 알기에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이군 아버지의 설득에 입술의 타고난 모양을 보고 판단키로 결정, 그를 직접 본 신 선생은 놀랐다.

그의 입술이 두툼하고 대금 연주에 최적화된 이생강 명인과 똑 닮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군은 단기간에 대금 잡는 법부터 악기 부는 법을 습득했을 뿐아니라 대금 연주의 가락을 단시간에 외우고 해금, 거문고, 대금, 가야금 등 장구 장단도 한번 들으면 바로 장구 장단을 맞출 정도로 습득력이 빨랐다.

이군은 지난 6월 초부터 신 선생 지도 외 연습실을 빌려가며 밤낮으로 대금을 연습했고, 결국 편입시험에 합격, 지난 8월 중순부터 함덕고 음악과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이군은 남은 2개월여 간 전국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어 제12회 환경‧담양소리축제 전국국악대전에서 고등부(관악) 최우수상을, 신 선생도 지도교사상을 받았다.

또 이군은 현재 대금 청공에 일종의 갈대막을 붙여 내는 청소리를 구사하는데, 이는 이군이 대금에 매력을 느끼는 계기가 된 소리이자 많은 이들이 장기간 연습해야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군은 “내년에는 국악으로 함덕고 음악과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고 싶고, 그 이후엔 조금 더 큰 대회도 나가서 수상도 하고 싶다”며 “어른이 돼서는 제주도가 국악의 불모지다보니 앞으로 나날이 발전해 국악의 편견을 깨고 인기가 많아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 선생은 “동건 학생이 4개월 반만에 이룬 건 많은이들이 5년이 걸리는 성과”라며 “대금 산조와 청 떨림과 같은 어려운 기술을 짧은 기간안에 이해하고 습득하는 재능이 천부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신 선생은 내년 제주아트센터에서 ‘예악(禮樂)’을 주제로 제9회 대금 독주회를 연 뒤 한 달여 뒤 김군 등 제자 50여 명과 함께 서울 국립극장에서 동명의 콘서트로 무대에 오른다.

대금 정악과 대금 산조, 가야금 산조, 퓨전 음악 등이 깃든다.

이동건 학생과 함께 연주에 나선 신은숙 선생.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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