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벽화에 대한 단상
마을벽화에 대한 단상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1.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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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칼럼니스트

길가다 동네 골목이 눈에 띈다. 마을 여기저기에 벽화가 눈을 사로잡는다. 천사의 날개가 그려져 있다. 연말 연하장에서 보던 농촌의 모습이 보인다. 과거의 한 역사 장면이 묘사된 듯한 그림이 있는가 싶더니 갑자기 장미꽃이 담벼락 한구석을 가득 채웠다. 그림이 두서없다. ‘재미있네’라는 느낌이 지나고 나니 ‘왜 저 그림들을 그렸지’, ‘이 마을과 무슨 상관이지’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전국적으로 벽화가 마을의 정체성을 이루는 곳이 꽤나 많다. 부산의 감천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몰려온 피난민들 중심의 산동네였지만 다양한 벽화로 벽화마을의 유명세를 가장 크게 타고 있다. 통영의 동필항, 동해 묵호 등대마을을 비롯해 천사 날개의 원조로 여겨지는 서울의 이화마을 등 벽화의 힘을 빌려 유명해진 마을이 여럿 된다.

제주에도 일도2동 두맹이골목을 비롯해 신천리 벽화마을, 용담 벽화거리 등 나름 잘 알려진 장소도 있지만 벽화마을의 이름을 쓰지 않아도 마을 안길의 곳곳을 벽화로 단장해 놓은 곳이 많다. 경관사업으로 유행이 지난 지 꽤나 됐음에도 여전히 선호하는 경관사업의 한 종류다.

최근 청주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수암마을을 찾았다. 오래된 낡은 산동네의 골목골목마다 옛적 정겨운 풍경과 불교 연관 그림 등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골목의 상태는 그대로인데 벽화만 가득 찬 느낌이다.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차마 걷기 힘들었을 공간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러다 갑자기 골목이 끝나고 도로가 나온다. 그럼에도 벽화마을을 찾아 산책하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걷는 도중 나를 쳐다보는 할머니 세 분의 눈빛이 가슴속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뭣 하러 이곳까지 찾아왔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짧은 탐방 후에 마을 옆을 지나다 보니 갑자기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시내 풍경이 잘 보이도록 깎아지른 산비탈에 화려한 건물들이 군집으로 들어서 있다. 모두가 카페다. 많은 차들이 갓길 주차를 하느라 정신이 없고 풍광이 좋은 자리는 만원이다. 드라마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꽤나 알려진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핫플레이스가 분명하다.

조금 전 보았던 벽화마을과 느낌이 너무 다르다. 벽화마을이 새로운 카페촌을 위해 존재하는 부수적인 산책거리라는 느낌이 강하다. 마을의 정체성이 아직 부족한 마을과 대중문화적 이벤트를 계기로 급팽창하는 상권이 대비된다. 양쪽의 공간이 상생할 수 있을까. 관광의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날 쳐다보던 노인들의 표정이 계속 남는다.

제주에도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손쉬운 경관관리의 수단으로 벽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꽤나 된다. 이를 통해 마을이 알려지기를 바란다. 다만 마을마다 정체성이 잘 드러나면 좋겠는 데 연결성이 없다. 마을 고유의 특색이 없는 그림 일색이다.

경관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마을의 이미지다. 마을 내 장소의 기억이 마을의 자산이 되고 그 마을을 특징짓는 중요한 정체성이다. 벽화를 그리거나 시비를 세우거나 조형물이나 상징물을 만들어 세울 수 있다. 꽤나 많은 지역과 마을이 이 같은 방법을 채택한다. 마을의 경관은 마을의 인상을 결정하는 시작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해녀가 반응이 좋다고 모든 마을에 다 해녀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그 마을의 특색이 될 수 없다. 마을의 장소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 의미 있는 자원으로 만드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다른 곳에 없는 마을의 특색을 찾아서 그림으로 표현됐을 때 벽화가 진정 마을의 자원이고 경관이 된다. 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다는 점을 알아주면 좋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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