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뿌리 찾기 사투…끝나지 않는 4·3의 비극
잃어버린 뿌리 찾기 사투…끝나지 않는 4·3의 비극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11.04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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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연구소, ‘내 호적을 찾습니다’ 증언본풀이마당 개최
강순자·김정희·오연순씨 증언…뒤엉킨 가족 관계 호소
강순자씨가 4일 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스무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에 참여해 증언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강순자씨가 4일 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스무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에 참여해 증언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우리 아버지 자식은 나 하나뿐인데…‘강상룡 딸’이라고만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소원입니다.”

강순자씨(78)는 1943년 당시 하귀리 동귀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이던 1948년 12월 어느 날 집에 온 아버지 친구가 “야! 상룡아! 공회당에 모이랜 햄쪄!”라고 외쳤다. 그렇게 아버지는 친구와 연설을 들으러 공회당에 갔고, 그게 강순자씨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날 공회당에 모인 주민들은 신엄리 자운당으로 끌려 가 같은 해 12월 28일 동네사람 70여명과 함께 총살당했다.

제주4·3은 고작 여섯 살이던 강순자씨에게도 절대 낫지 않는 비극의 상처를 남겼다. 제 때 출생신고도 못하고 아버지 없이 살아가던 강순자씨는 뒤늦게 외삼촌의 호적에 조카로 올려졌다. 매일이 공포였던 그 시절 강순자씨는 ‘누구 각시’, ‘누구 자식’이라면서 잡혀갈까봐 아버지 사진도 모두 불태웠다.

어느덧 여든을 앞둔 강순자씨에게 소원은 단 하나다. 이 세상에 ‘강상룡’이라는 사람이 존재했고, ‘내가 그의 자식이다’라는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것이다.

㈔제주4·3연구소(이사장 이규배·소장 허영선)가 4일 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진행한 스무 번째 증언본풀이마당 ‘나의 뿌리, 4·3의 진실 – 내 호적을 찾습니다’에 참여해 한 맺힌 삶을 풀어낸 강순자씨는 “아버지 얼굴이 어스름하게 기억난다. 4·3평화공원에 아버지 위패가 올라가 있어 한 번씩 가본다”면서 “그러나 호적이 없어 유족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사망신고조차 안 돼 있고, 이제 와서 내가 하지도 못 한다”며 토로했다.

아버지의 묘를 파야만 가족 관계를 증명할 수 있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강순자씨의 사연에 대강당은 숙연해졌다.

김정희씨가 4일 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스무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에 참여해 증언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김정희씨가 4일 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스무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에 참여해 증언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강순자씨에 이어 증언에 나선 김정희씨(72)는 1949년 애월읍 고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순씨는 당시 열아홉 나이에 신엄지서에 잡혀갔다가 김정희씨가 태어나기도 전인 1948년 12월 18일 신엄리 ‘원병이’ 서쪽에서 총살당했다.

김정희씨의 어머니는 시댁에 찾아갔다가 군인이 쏜 총에 총상을 입었다. 치료 과정에서 뱃속에 애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총상과 출산이 겹쳤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딸을 낳고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김정희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이 되자 할아버지가 ‘김홍’이라는 ‘가짜 아들’을 만들었다. 김정희씨는 김홍의 딸로 출생신고하고, 김정희씨의 어머니는 김홍의 아내로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김홍을 사망신고 했다. 그렇게 김정희씨는 ‘진짜 아빠’인 김순씨의 조카가 됐다.

김정희씨는 “나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남편을 찾기 위해 호적 정정을 시도했다. 어머니는 지난해 김홍과의 혼인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진짜 남편인 김순의 아내로는 정정하지 못했다”며 “아버지의 유골로 유전자 검사라도 해서 김순의 딸임을 증명하고 싶지만 한 차례 이장을 했기 때문에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4·3특별법으로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저 내 아버지를, 내 어머니의 남편을 되찾고 싶다”고 호소했다.

오연순씨가 4일 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스무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에 참여해 증언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오연순씨가 4일 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스무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에 참여해 증언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이날 오연순씨(73)는 기다긴 소송 끝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찾았다. 아버지 사촌의 딸로 호적을 올린 오연순씨는 패소와 항소를 거듭한 끝에 2019년 7월 법원으로부터 ‘아버지는 오원보, 어머니는 김무옥’임을 확인받았다.

이날 증언본풀이마당을 개최한 이규배 이사장은 “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를 잃고 그들과의 연결고리인 호적조차 뒤엉킨 채 일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뿌리를 찾는 길은 곧 4·3의 진실을 규명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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