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기다리며
영웅을 기다리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0.2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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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작가

코로나 사태가 길어짐에 따라 집안에 틀어박혀서 텔레비전으로만 세상을 탐색하다 보니 짜증이 난다. 정치는 온통 권모술수로 뒤범벅된 것 같고, 가치는 전도가 되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먹고 사는 문제는 호랑이 아가리보다 더 무섭다는데 방역을 할수록 확진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부채는 지금 태어난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즈음이면 일인당 1억 가량이 된다고 한다. 게다가 서로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격랑 사이에 낀 조각배 같은 처지다. 현재의 상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난세다. 흔히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을 한다. 이 총체적 난국을 시원하게 뚫어줄 영웅이 필요하다는 뜻일 거다. 영웅 이야기를 하자니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어벤져스가 생각난다.

제각각 다른 영화에 나와서 세계인을 사로잡았던 주인공들을 한데 모아놓은 영화다. 줄거리는 이렇다. 4차원 시대의 에너지원 ‘큐브’를 이용한 악당의 등장으로 인류가 위험에 처하자 국제평화유지기구의 국장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슈퍼히어로들을 모아 어벤져스 팀을 만든다. 아이언맨부터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등이 그 멤버다.

하지만 각기 개성이 강한 이들의 만남은 티격태격 서로간 갈등을 유발하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결국엔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의 운명을 건 거대한 전쟁에서 어벤져스 작전은 성공한다. 인류 평화에 대한 일념이 그들의 힘을 합치게 한 것이다. 내용은 복잡한 듯 보이지만 우리나라 오래된 만화 영화 은하철도 999나 로봇 태권브이와 일맥상통한다.

느닷없이 오래된 영화가 떠오른 것은 대선 예비 후보들의 치열한 접전이 한창 벌어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각 정당의 예비후보가 저마다 난세를 평정할 영웅이 자신임을 내세운다. 그들은 모두 이 말 많고 탈 많은 대한민국의 문제를 일격에 해결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문제의 실타래를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사회는 우주 전쟁 못지않게 위험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물리쳐야 할 악당은 수없이 많다. 그 악당이 누구냐고는 묻지 말자. 해결해야 할 문제가 곧 물리쳐야 할 악당이니까. 나라를 좀먹고 경제와 민생을 위협하는 악당, 편 가르는 악당, 집도 땅도 꿀꺽꿀꺽 삼켜버리는 악당도 뿌리 뽑아야 한다. 호시탐탐 미사일을 쏘아대며 위협하는 악당, 산 너머 악당, 바다 건너 악당, 소리없이 침공해 들어오는 여러 악당들과도 줄다리기해야 한다. 이 만만치 않은 악당들과 싸워 이기려면 힘을 합해도 모자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편 가르기에만 급급했다. 보수와 진보가 그렇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그렇고 남자와 여자가 그렇다. 그런가 하면 꼰대니 라떼니 하면서 세대간 갈등까지 겹친다. 가치 판단의 기준이 옳고 그름에 있지 아니하고 진영 논리에 갇혀 내 편이냐 아니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현상이 판을 친다. 누가 이 해묵은 갈등과 분열에 휩싸인 사회를 통합할 것인가? 그런데 어느 편을 보아도 인류의 평화를 가슴에 품은 어벤져스의 영웅들처럼 사리사욕 대신에 대한민국과 국민을 가슴에 품은 후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 속에서 또 하나의 영웅은 슈퍼히어로들을 한데 모아 팀을 만들고 작전을 설계한 국제평화유지기구의 국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슈퍼히어로의 활약상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일촉즉발의 지구 대참사를 막아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게 된 것은 국장의 리더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초능력을 가진 대통령은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대통령은 어벤져스의 영웅들처럼 적어도 국가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집권세력을 위한 팀이 아니라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어벤져스가 되어야 한다.

요즘과 같은 패거리 정치판에서 그런 영웅이 과연 나올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다린다. 정의와 자유와 국가와 국민을 가슴 한켠에 장착한 영웅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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