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속’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다
‘성’과 ‘속’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0.21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EE, WAL CHONG(YON ART 2005)과 EROTIC 춘화첩
 ‘LEE, WAL CHONG’(YON ART 2005)과 ‘에로틱(EROTIC)’ 춘화첩(春畫帖) 특별판.

몇 해 전 우리 책방 2층에 조그만 전시장을 마련하고 나서부터 부족하나마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가지고 매번 주제를 바꿔가며 미니 전시회를 열고 있다. 딱히 내세울 만한 명품 반열에 드는 것은 없어도 이런 것도 있으니 관심을 가져주십사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부끄럽지만 계속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한 해에 한 두 번은 도내 관련 기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해서 전시 준비와 진행할 때 들어가는 경비 일부를 지원받기도 한다. 그럴 경우 자체 행사로 제대로 된 홍보물도 없이 조몰락조몰락 할 때보단 현수막도 걸고 외형을 갖출 수 있어서 해당 전시에 필요한 자료들을 추가해서 좀 더 풍성한 행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된다. 전시 자료를 추가한다는 게 다 비용이 들어가는지라 자체 ‘조몰락’ 전시 땐 엄두도 못내는 일이지만, 행사 지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우리 책방 나름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에서 하는 일에 종종 뜻밖의 감사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LEE, WAL CHONG’(YON ART 2005) 수록 작품.

지난 전시회를 준비할 때의 일이다. 원래는 우리나라의 한 유명화가 관련 전시물을 보충하기 위해 그의 일본인 스승이 쓴 책을 구하려고 일본의 한 온라인 헌책방을 방문했다. 그런데 관련 자료를 살펴보다 보니 막상 찾던 자료는 그다지 마음에 안 들고 그 안에 엉뚱한 게 숨어있었다. 그 자료를 보는 순간 이게 왜 여기 있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닭 대신 꿩’을 잡은 셈이었다.

그 자료가 바로 ‘제주생활의 중도 1990-2005’라는 부제가 붙은 이왈종 화백의 개인전 화집 ‘LEE, WAL CHONG’(YON ART 2005)이다. 안정적인 대학교수의 직을 던지고 제주로 이주한 이 화백이 15년간의 창작활동을 통해 제작한 작품들을 온전히 담은 책으로, 지금도 서귀포에 있는 왈종미술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이 화집이 무에 그리 귀할까 싶으실 것이다.

‘에로틱(EROTIC)’ 춘화첩(春畫帖) 속지의 이왈종 화백 서명 부분.

그 특별함은 이 화집과 세트를 이루고 있는 ‘에로틱(EROTIC)’이라는 제목의 춘화첩(春畫帖)에 있다. 그것도 딱 50점만(작가보존용 A.P. 15점 제외) 한정판(Limited Edition)으로 제작된 춘화첩이 포함된 특별판 세트이기 때문이다. 화집 190쪽에 실린 13폭으로 이루어진 춘화첩(도판 218)을 금(金)으로 선을 표현한 것까지 그대로 만들었고, 속지에 작가의 서명(제목)을 금니(金泥)로 썼으니 귀할 수 밖에….

‘에로틱(EROTIC)’ 춘화첩(春畫帖)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

미술평론가 오광수 선생은 화백의 이런 춘화 작품을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면서 성도 속도 아닌 중간항으로서의 균형’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들이 수치스럽지 않고 건강하게 비친 것은 해학적인 장치를 통한 삶의 진정성에 기인된 것’이기에 ‘잔잔한 웃음을 머금케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포르노의 경지를 저만치 벗어나’ 있고, 특히 화첩형식으로 꾸며진 것에 대해선 ‘(화첩이) 떳떳하게 내거는 것이 아니라 은밀히 펼쳐보는 그림이란 점에서 에로티시즘의 금기적 사항을 암시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주로 올 때 ‘그리고 싶은 그림 실컷 그리다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뿐이었다’는 선생이 앞으로도 강건하셔서 추구하시는 ‘삶이 녹아드는 그림, 그래서 즐거움과 안식을 줄 수 있는 그림’을 끊임없이 세상에 선보이시길 바란다.

‘에로틱(EROTIC)’ 춘화첩(春畫帖)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