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담은 듯한 신비로운 빛…아시아 최대 기수호
하늘을 담은 듯한 신비로운 빛…아시아 최대 기수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0.2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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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북인도를 가다(12)
레(Leh)에서 차로 6시간을 달려 도착한 판공호수. 해발 4000m에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기수호(汽水湖)로 얼마나 넓은지 그 끝을 알기 어렵다. 영화 ‘세 얼간이’의 엔딩 장면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레(Leh)에서 차로 6시간을 달려 도착한 판공호수. 해발 4000m에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기수호(汽水湖)로 얼마나 넓은지 그 끝을 알기 어렵다. 영화 ‘세 얼간이’의 엔딩 장면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 ‘화를 잘 내는 사람’이 가장 심한 욕
인도 카슈미르주의 라다크는 히말라야 산맥 북서단부와 라다크 산맥 사이에 있습니다. 험한 산악과 깊은 골짜기, 높은 고원으로 이뤄진 이 지역은 춥고 건조해 대부분 유목민이 살고 있답니다.

예전에 서인도를 갔을 때도 파키스탄과 국경 지역이라 크고 작은 전쟁이 자주 일어난다고 했었는데 라다크도 1949년 휴전 이후에도 툭하면 전쟁이 일어나고, 특히 1962년 중국과 무력충돌이 일어났다가 휴전됐으나 국경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정에 외부와의 접촉이 어려웠고 1975년에야 외국인에게 문호가 개방됐다고 합니다.

빈약한 자원과 혹심한 기후에도 1000년 넘게 독자적인 언어와 티벳 불교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자급자족의 삶을 꾸려가는 검소한 생활과 협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깊은 생태적 지혜를 통해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다크 사람들도 티벳 사람들처럼 명상의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티벳 불교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런지 걷거나 대화를 하다가도 진언을 한마디씩 넣어 어조를 바꾸지 않고 단숨에 ‘옴마니밧메훔’을 내뱉는데, 특히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모여 앉아있는 곳에 낯선 사람이 와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마치 언제나 이곳에 오던 사람이 다시 온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또 편안하게 대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누는 사회에서 나의 이익은 이웃의 이익이 되고 이웃의 이익은 나의 이익이 되며, 또 나의 불행은 이웃의 불행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되는 연결감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관용의 정신은 행복의 필수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랍니다. 

라다크에서 가장 심한 욕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랍니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은 우리 마음에 대한 미움’이라고 믿고 있는데 한 예로 추수하는 도중 눈이나 비가 와서 여러 달 애써 잘 가꾼 밀이나 보리를 망치는 일이 있어도 ‘그냥 비가 내릴 때가 돼 내리는 것이지, 그 비가 우리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그런데 왜 굳이 찾아서 괴로워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한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그들만의 삶의 철학이 아닌가 합니다. 

레(Leh)에서는 지프를 택시라고 하는데 지프 주인과 요금을 정하고 하루 또는 정해진 구간만 다니는 것으로 요금을 깎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동안 인도의 여러 곳에서 요금을 깎았는데 여기서는 씨알도 안 먹혀 주라는 대로 다 줘야 합니다.

레를 이틀간 돌아봤으니 오늘은 티벳 국경 지대의 ‘판공호수’(Pangong Lake·班公湖·판공초)로 가기 위해 우리 일행만 따로 차를 빌려 출발 준비를 마치고 기름을 넣으러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차가 밀려 차례를 기다리는데 아기를 안은 아주머니가 차 유리창을 두드리며 아기 우윳값을 좀 달라고 사정합니다. 이를 본 이한정씨가 너무 불쌍했던지 지갑에서 1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준다는 게 그만 실수로 100달러짜리를 건넸습니다. 돈을 받아 든 아주머니는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머리를 수도 없이 굽히더니 황급히 돌아갑니다. 아마 평생 처음 큰돈을 받아 놀라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봐 겁이 났는지 도망치듯 자리를 뜹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 아주머니가 100달러짜리 돈을 가져봤을까?”, “그 돈이 얼마큼 큰돈인 것을 알까?”, “혹시 은행에 환전하러 가면 어디서 훔친 것이 아니냐고 혼나지 않을까?”, “그 돈이면 몇 달 동안은 아기 우윳값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등등 일행들 사이에 이야기가 끊이지 않으며 종일 화제가 됐습니다. 이 보시(布施) 덕에 이번 여행 내내 아무런 사고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가는 길에 레 공항 옆을 지나면서 공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유사시에는 군사공항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험준한 산을 굽이굽이 도는 위험한 길을 지나야 판공호수에 닿을 수 있다.
험준한 산을 굽이굽이 도는 위험한 길을 지나야 판공호수에 닿을 수 있다.

■ 영화 ‘세 얼간이’ 촬영지 ‘판공호수’
판공호수는 레에서 150㎞ 거리에 있어 차로 6시간을 달려가야 합니다. 해발 4000m에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기수호(汽水湖·하층은 바닷물, 상층은 민물인 이층구조로 됨)랍니다. 영화 ‘세 얼간이’의 엔딩 장면 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으로 가는 길도 산을 넘고 굽이굽이 돌아가야 해 무척 위험합니다. 특히 반드시 넘어야 하는 해발 5320m의 창라(Chang La) 고개는 세계에서 세 번째 높은 자동차 도로입니다. 차를 잠시 멈춰 쉬면서 주변 경관을 구경하는데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어지럽습니다. 갑자기 해발고도가 높아져 걷는 것은 물론 숨쉬기도 어려워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호수로 향했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판초호수. 입구 언덕에 잘생긴 야크를 타고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몰려있는데 이들 너머로 드넓게 펼쳐진 파란 호수가 장관입니다.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 너머가 티벳이라고 합니다. 호수 가운데에는 마치 반도처럼 긴 모래 둔치가 그림처럼 펼쳐졌고 호수는 그 끝을 알기 어렵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호수, 과연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언젠가 BBC방송에서 이 호수 끝에 있다는 인도에서 가장 작은 마을에 관한 프로그램을 봤던 기억이 떠올라 그곳으로 가보자고 했더니 운전기사는 요금을 더 내야 한다고 우깁니다. 운전기사를 겨우 달래 도착한 마을. 돌담길을 따라 옹기종기 집이 모여 있는 오지 중의 오지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시간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운전기사의 재촉에 왕복 300㎞를 와서 1시간도 채 머물지 못하고 다시 레를 향해 바쁘게 달립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다 못 찍은 호수를 촬영하면서….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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