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오늘도 보이스피싱에 운다
누군가는 오늘도 보이스피싱에 운다
  • 정용기 기자
  • 승인 2021.10.21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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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얘길 주워들으려고 경찰서에 가면 최근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어제는 택시기사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았다’, ‘며칠 전엔 2000만원 보이스피싱 수거책을 잡았다’, ‘자꾸 피해가 생겨서 안타깝다’ 등이다.

이제는 경찰 출입 기자한테도 너무 익숙해진, 수법도 몇 차례 들어서 친숙하기까지 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얘기다.

기사 형태도 ‘발생 기사’로 가는 경우는 점점 없어진다.

‘주의가 요구된다’라는 등 경각심을 주려는 의미를 담아 기사 첫 줄을 마무리 짓곤 한다.

이 때문인지 경찰 쪽에서 피해예방 목적으로 보도요청을 해도 솔직히 끌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보이스피싱은 내 기자수첩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그런데 최근 이 경솔한 생각을 고쳐먹게 만든 소식이 있었다.

보이스피싱 원조 격인 ‘김미영 팀장’의 조직 총책이 9년 넘는 도피 끝에 잡혔단 것이다.

씁쓸하고 부끄러웠다. 자그마치 9년이다. 원조를 잡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피해자만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동안 보이스피싱이 근절된 것도 아니다. 온갖 새로운 수법이 판을 치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는 400건에 가깝다. 피해금만 77억원이다.

땀으로 번 수천 만원이 매일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흘러간단 얘기다.

보이스피싱 사건 기사를 시시한 일감으로만 바라봤던 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회사 선배가 지나가는 말로 “넌 직장을 선택한 게 아니라 직업을 택한 거다”라고 했던 적이 있다.

이 말이 다시 무겁게 와닿았다. 

범죄 피해는 당사자에겐 평생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큰일이다. 생각 없이 사건을 바라봐선 안 되는 이유를 새삼 느꼈다.

누군가는 오늘도 보이스피싱에 속아 울었을지도 모른다.

정용기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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