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증과 열증사이, 상열하한증
냉증과 열증사이, 상열하한증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0.17 1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성진 한의학 박사

무더운 여름에도 추위로 힘들어했던 분들이 있다. 초가을밖에 안 됐는데도 벌써부터 추위를 못 견디시겠다 하신다. 앞으로 닥칠 겨울에 고생할 것이 걱정되던 차에 한의원에서 뜸치료를 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맘때 내원하시는 분들이다. 

이분들의 또 다른 특징은 안 다녀 본 병원이 없다는 점이다. 여름 추위를 치료해준다는 병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함께 동반되는 질환들이 많기에 이 병원 저 병원 오래 다니고 계시는 경우가 많다. 소화불량, 식욕부진이 있어 역류성 식도염이나 위염약을 복용하시거나, 불면, 수면장애, 변비, 야간빈뇨로 신경정신과와 비뇨기과, 내과 등등을 다니시곤 한다. 동네 의원을 다니다 차도가 없을 땐 용하다는 의원을 찾고 이마저도 만족스럽지 못하면 종합병원을 찾아 여기저기 샅샅이 검진해서 대증 양약을 처방받아 장기간 복용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한의원에 내원하시는데 이런 분들이 유독 많은 계절이 초가을 이맘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여름에도 추운 ‘상열하한증’(上熱下寒症) 환자들이다. 위장을 중심으로 해서 상체 쪽으로 열이 몰려있어 쉽게 소화기계통 염증과 상체 건조증과 수면장애가 발생하기 쉽고, 아랫배를 중심으로 해서 하체 쪽으로 냉이 몰려있어 추위와 소화불량, 수족냉증, 소변빈삭을 호소하기 쉬운 것이 상열하한증 환자의 특징이다.

이런 상열 하한 상태를 근거 중심의 양의학에서는, 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열증(熱症)’과 ‘냉증(冷症)’이란 진단보다는, ‘염증’과 ‘순환장애’로 표현한다. 냉증과 열증이라는 한의학의 진단이 어찌 보면 추상적이고 모호한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시적(micro)인 원인분석에 강점이 있는 양의학적 진단에 비해 거시적(macro)으로 전체의 균형 여부를 보는 한의학적 접근이 ‘여름 추위 상열하한증’을 이해하는데 보다 적합하다 생각한다. 가까이서 봐야만 잘 보이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멀리서 봐야 잘 보이는 것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상체 열증과 하체 냉증은 상대적인 것으로 체온측정을 해보면 상체와 하체가 모두 정상체온의 범주에 있기 때문에 양의학적 관점에선 질병 상태라 인식하기가 쉽지 않지만, 한의학에서는 그 자체가 질병의 원인이라고 본다. 한의학에서는 건강할수록 차기 쉬운 하복부는 따듯하고, 열 받기 쉬운 상체는 열이 해열되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병적상태보다 건강상태에 관심이 많은 한의학의 특징이다. 이는 열기(熱氣)는 상행(上行)하고 냉기(冷氣)는 하행(下行)하는 자연현상과 정 반대 상태로 그 자체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높은 에너지 순환효율이 가능하기 때문에(손쉽게 상하순환이 가능해짐) 건강한 힘을 유지하기 좋은 신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상열하한증은 상한하열한 건강상태의 정반대이기 때문에 염증과 종양과 혈액 순환장애 없이도 각종 병리 현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렇듯 거시적 접근으로 상열을 식히고 동시에 하한을 데워줘야 손쉽게 호전되는 상열 하한 ‘여름추위병’ 환자들이 여러 병·의원을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나무를 보느냐? 숲을 보느냐?’의 접근방식의 차이였다고 볼 수 있겠다.

차를 한 대도 만들지 않았어도 시가총액이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와 은행지점이 하나도 없어도 모든 은행의 시총을 합한 것 이상으로 인정받는 인터넷뱅킹 회사의 출현을 경험한 시대이다. 이처럼 접근방식의 변화와 발상 전환이 의학, 의료 분야에서도 필요해질 때 K-Med, 한의학(韓醫學)의 매력이 온 세상에 빛날 것이라 예상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유전통의학 면허제를 지켜낸 한국은 양의학과 한의학의 적대적 공존으로 이미 ‘다양성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의료당사들이야 힘들었지만 어쩌다 보니 의료선진국 돼버린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