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불교 왕국의 수도…부처의 미소 간직한 도시
옛 불교 왕국의 수도…부처의 미소 간직한 도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0.14 1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부.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북인도를 가다(11)
라다크(Ladakh) 왕국의 옛 수도 레(Leh)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 지역에 있는 콤파 언덕에 거대한 불상과 스투파(불탑)가 세워져 있다.
라다크(Ladakh) 왕국의 옛 수도 레(Leh)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 지역에 있는 콤파 언덕에 거대한 불상과 스투파(불탑)가 세워져 있다.

■ ‘작은 티벳’ 라다크
라다크(Ladakh)는 원래 티벳에 속했었는데 10세기쯤 라다크 왕조가 독립하며 티벳 제후국으로 발전, 티벳 고원과 인도 대륙 사이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한때는 남부 실크로드의 중간기지로 대상들이 북적대던 번화한 곳이었답니다.

서티벳의 구게 왕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700년간 강성했던 이 왕국이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는 취재를 했었습니다. 강성한 문명국가가 무슨 이유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궁금했었는데 자료에 의하면 1635년 카슈미르에서 온 라다크인의 집요한 공격 앞에 무너지고 말았답니다.

라다크 왕국과 푸란 왕국, 그리고 구게 왕국은 토번(吐蕃) 왕국이 분열된 뒤 성립된 국가랍니다. 토번의 마지막 왕 랑다르마가 죽은 뒤 벌어진 수차례 왕위 쟁탈전에서 패한 지더니마(吉德尼瑪) 왕자가 아리(阿里)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왕국을 건설했고, 후에 아리 지역을 세 부분으로 나눴는데 이들 나라가 바로 라다크, 푸란, 구게 왕국입니다. 이 가운데 구게 왕국은 라다크에 의해 멸망된 것입니다.

라다크라는 이름은 ‘고갯길이 있는 땅’이라는 티벳의 단어 ‘라-다그스’로부터 기원했다는 것만 봐도 라다크를 왜 ‘작은 티벳‘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라다크 왕국의 궁전으로 셍게 남걀(Sengge Namgyal) 왕에 의해 1630년에 지어졌다. 언덕 정상에는 남걀 체모 콤파가 보인다.
과거 라다크 왕국의 궁전으로 셍게 남걀(Sengge Namgyal) 왕에 의해 1630년에 지어졌다. 언덕 정상에는 남걀 체모 콤파가 보인다.

■ “줄레!”…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사람들
라다크는 지형의 80%가 해발 3000m 고원지대라 가급적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산 위에 있는 레 왕궁을 가려면 시간이 바쁠 것 같아 너무 서둘렀더니 숨이 헉헉거려 가슴을 움켜쥐고 앉아있는데 지나가던 한 여인이 “줄레!”하며 쳐다봅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 가쁘게 숨을 쉬며 쳐다보자 다시 “줄레!”하면서 어딘가를 손짓하고 있어 바라보니 왕궁입니다. 고개를 끄덕거리자 ‘가파르니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고 알려주는 듯한 걸음표현을 합니다. 고맙다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자 그 여인은 라다키들의 전통적인 미소를 보이며 가던 길을 갑니다. 쭈그리고 앉아 고통스러워하는 나그네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줄레!”(어디 가십니까)하고 그들의 인사말을 건네며 어떤지 살피고 미소로 안정을 확인하는 고마움, 이것이 라다크 사람들입니다. 

오후가 되면서 미세먼지 때문인지 시야가 답답해 상당히 높이 올라왔는데도 히말라야 산맥은커녕 도심지도 시원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쉬엄쉬엄 가라던 아까 그 여인 모습을 떠올리며 걷다 쉬기를 몇 차례, 골목길을 돌고 올라서니 왕궁 앞에 왔는지 관광객들이 성터 담에 걸터앉아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저 위까지 올라갔다가 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문 앞에 있는 현지주민에게 손짓으로 ‘갔다 올 수 있느냐’고 묻자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옛 왕궁이라 그런지 아니면 다른 곳에 유물이 전시됐는지 옥상까지 올라가는데 별로 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옥상에 올라서자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서둘러 사방으로 촬영을 마치고 나도 저들처럼 앉아 혼자 이야기를 해 봅니다.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한참을 생각하던 중 문득 어느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만나지 말자면서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바로 너다.’(나태주의 그리움)

여행을 떠나 올 때 “험하고 위험스러운 곳만 찾아가느냐. 이제는 좀 편한 여행을 할 나이가 아니냐”며 걱정하던 집사람의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려 얼른 볼펜을 꺼내 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나 지금 레 왕궁 위에 올라와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제면 함께 이런 여행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써 놓고는 “입에 발린 소리”하며 피식 웃어봅니다.

아침 일찍 레 도심지 한 모퉁이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란다.
아침 일찍 레 도심지 한 모퉁이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란다.

■ 여름이 4개월 겨울은 8개월
저 너머가 히말라야 산맥이 넓게 펼쳐졌다는데 날씨 때문에 볼 수는 없을 것 같아 내려가면서 오늘 다녔던 사원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라다크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느 책에는 라다크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같은 몽골리안이라고 썼던데 고산지대의 강한 햇빛으로 얼굴에는 주름이 깊고 피부는 검고 볼은 빨갛고 체구는 작다고 했지만 이런 모습은 아시안 지역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라다크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라다크 사람들을 얼마나 만났다고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이다 아니다’를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순수한 미소와 마음은 우리와 닮았고 아름답고 순박합니다.

라다크는 여름이 4개월에 불과하고 8개월은 혹독한 겨울 날씨랍니다. 그래서 여름 4개월 동안만 일하고 나머지 8개월의 긴 겨울은 대부분 잔치와 파티를 하며 보낸다니 이들 삶의 질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것 같습니다.

‘우리처럼 밤낮없이 일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민족도 드물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며 숙소로 뚜벅뚜벅 힘없이 걸어갑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