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책
가을 산책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0.1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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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제주도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길에 올랐다. 은빛 물결의 억새꽃이 가을임을 실감케 한다. 10월답지 않게 겉옷을 벗게 할 만큼 날씨가 따뜻해서 산책하기엔 안성맞춤이다.

1세기 때부터 주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제주농업과 어업의 시초가 되었던 삼양동 유적을 둘러보는 것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제주에 사는 백성들이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님을 기렸다는 조천포구 ‘연북정(戀北亭)’, 왜적이 침입하자 성을 쌓아 왜적을 막았다는 구좌읍 하도리 해안가 ‘별방진성’을 거쳐 종달리 지미봉에 이르자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조망 할 수 있어 참으로 이국적이다.

다른 오름들과 달리 5천 년 전, 제주도의 생성초기에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하면서 수성화산체로 만들어졌다는 성산일출봉.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오묘한 자연에다 사계절 각각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표출하면서 문화를 형성하는 우뚝 솟은 봉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아름다움과 독특한 가치를 가졌다고 해서 세계자연유산이 된 성산일출봉이 있어 제주는 더욱 아름답지 싶다. 

성산포 광치기 해변의 바다 향기 맡으며 제주도 동쪽 끝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양리 ‘섭지코지’를 찾았다. 

적의 침입과 위급한 일이 있을 때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방호소나 수전소에 빠르게 연락하기 위한 통신망의 하나로 삼았던 ‘협자연대(俠子煙臺)’와, 연속극 ‘올인’을 촬영했던 건물만 그대로 제자리에 있을 뿐 많이도 변했다. 

이곳은 천혜의 자연풍광을 자랑하며 언제 봐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맑은 물이 그렇거니와 아름다운 넓은 초원과 깎아 지른 듯한 절벽, 다양한 형태의 바위 등을 통한 미적 호소력이 빼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 넓은 잔디밭 광야를 걸으며 성산일출봉과 우도, 저 멀리 망망대해로 뻗은 바다를 조망하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던 곳. 하지만 광야였던 넓은 잔디밭은 시멘트 건물들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래서 넓은 광야의 자연을 만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바다 풍광이다. 특히 이곳 촛대 모양의 선돌 바위는 선녀와 용왕신의 아들 간의 못다 이룬 사랑의 전설이 담겨 있다. 그나마 이곳을 찾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옛날, 어느 용왕님의 아들이 이곳에서 목욕하던 아리따운 선녀를 보게 되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간청하여 혼인 승낙을 받았다. 선녀와 만나기로 한 100일째 되던 날 갑자기 거세게 불어 닥친 바람과 높은 파도로 선녀가 내려오지 못하면서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슬픔에 빠져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바위가 ‘선돌바위’다. 섭지코지까지의 산책이 끝날 즈음, 아쉬움을 달래며 발길을 돌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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