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0.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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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제주문화창의연구회 회장

오랜만에 제주시 ‘칠성통’ 골목길을 걸었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지만 공직 시절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셨던 선배 윤한병 군수가 생각나서다. 그곳은 그분께서 구십여 평생을 사셨던 동네다.

한산한 골목에서 들리는 음악은 가신 이와의 추억까지 호출한다. ‘이브 몽탕’의 ‘고엽’이다. 불멸의 샹송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선선한 가을 낙엽처럼 내 안으로 진다. 더불어 시(詩)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서울 출장길에 사 들고 오셔서 내게 선물해 주셨던 시집(詩集)까지 생각난다.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낙엽’이라는 시가 실린 시집이다.

이 시는 ‘이브 몽탕’의 노래 ‘고엽’과 함께하는 가을을 대표하는 시다. ‘…/시몬, 너는 좋으냐?/낙엽 밟는 소리가/…/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로 이어지는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정으로 가득한 선배님의 따뜻한 영혼을 보는 듯 내 마음이 촉촉이 젖는다.

특히 ‘…/가까이 오라/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가까이 오라/…’로 종결짓는 대목에선 선배님께서 오늘을 예상하시고 내게 선물하신 예언의 시집인 듯해서 가슴이 아리다.

구르몽의 ‘낙엽’을 가리켜 ‘가을이라 쓰고 죽음이라 말하겠노라’고 노래하는 시인도 있다. 그렇지만 구르몽의 시는 생명이지 죽음은 아니다.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라는 대목이 그렇다. 시들어 가는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는 낙엽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위한 자기희생이며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마중물이다. 

‘밟으면 영혼처럼 운다’라는 대목은 감동 이상의 창조적 울림이다. 이것이 구르몽의 시이며 계절을 의미하는 철학이다. 따라서 계절은 멈춤이 아닌 변화다. 변화는 사라짐이 아닌 새로운 것으로의 도전이다. ‘사라짐’은 사라지는 그 자체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생명을 얻기 위한 자기희생이다. 자연과 환경을 대하는 시각과 처신도 이와 같다. ‘사라짐’이란 사라지는 것 이상의 미래의 발전과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자기희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돌아가신 윤한병 선배를 또다시 호명하지 않을 수 없다. 새마을운동 시작과 함께 나는 그분을 제주도청 새마을과장으로 모셨다. “새로운 것으로의 도전.” 이것은 그분의 철학이었다. 농어촌지붕개량사업과 함께 변화된 지붕의 색깔을 어떻게 입힐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바닷가 마을은 바다색’, ‘산간마을은 초록’이라고 낙서하듯 구상하시던 그분의 철학이 그것이다.

새마을운동은 우리 삶의 변화였고 환경의 변화였으며 자연의 변화였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사고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제주도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제2공항이라는 정책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 정책에 반기를 두는 이들과 마주하고 있다.

환경파괴, 자연훼손 등의 상투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이다. 그들을 이끄는 건 몇몇 정치인과 시민단체들이다. 그들 못지않게 한때 제주도정을 이끌었던 책임 있는 분들의 함구하는 모습 또한 안타깝다. 여론몰이·눈치 보기·이기주의적 논리로 몰고 가는 한 제주의 미래는 없다. 고도의 정책과 기술을 수반한 미래공학적 논리로 추진돼야 하는 것이 공항건설이기 때문이다.

도민들이여! 그래도 변화가 두려운가. 제2공항을 건설함으로 더 좋은 삶의 터전과 환경, 더 아름다운 자연을 조성할 수 있다는 걸 상상해 보지는 않았는가. 춥고 배고프고 가난에 찌들었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들을 벌써 잊었는가.

그것들로부터의 변화와 도전은 오늘을 있게 했고 제주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세상은 변하고 또 다른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 배고프지 않다고 훗날 우리 후손도 배고프지 않을 거라고 누가 보장할까.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고 멋스러운 삶의 기반을 만들어서 그걸 물려주는 변화에로의 도전, 지금 그게 요구될 때다. 도민들이여 두려워 말자. 여기서 멈추지 말자. 그리고 도전하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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