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에서 집필까지 30년…상고민족사 연구
구상에서 집필까지 30년…상고민족사 연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0.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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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민족사(朝鮮上古民族史)(동국문화사 1966)

일반적인 서점에서 파는 책들은 책방지기가 선별한 놈들이다. 주로 독자들이 즐겨 찾는 잘 나가는 책을 위주로 본인의 관심 분야 책들을 일부 섞어서 주문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헌책방에 입수되는 책은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책을 정리하려는 분들의 연락을 받고 출장을 가거나 무거운 책을 팔려고 직접 가지고 오셨는데, 우리 책방에 필요한 책들만 선별해서 매입하기 미안하기에 대개 몽땅 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을 매입하는 일이 항상 피동적인 건 아니다. 특정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자료관이나 박물관 같은 기관들이 어떤 책이나 자료를 구할지 예상하고 우리가 먼저 선제적으로 입수해서 제안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해당 기관에서 필요한 자료 목록을 주고 구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가 주동적으로 자료를 수소문할 땐 그 재미가 쏠쏠하다. 돈 얘기가 아니다. 나름의 전문성을 살려서 이제는 구하기 힘든 자료를 나름 힘들게 입수해서 꼭 필요로 하는 기관에 납품한다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즐겁게 일하다 보면 종종 의외의 소소한 기쁨이 함께 하기도 한다. 오늘은 그런 소소한 기쁨 가운데 한 가지를 소개해 보련다.

얼마 전 곧 특별전을 준비하는 한 기관으로부터 필요한 자료목록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구하는 자료에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하필이면 목록의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놈이 물 건너에 있었다. 꼭 필요한 자료라서 무조건 입수는 해야 하고, 한편으론 우송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나라라서 생각 끝에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갖고 싶었던 책을 몇 권 함께 주문했다. 도착한 꾸러미를 열어보니 별 생각 없이 주문한 책 가운데 한 권이 특별하다.

바로 해산(海山) 최동(崔棟 1896~1973)의 ‘조선상고민족사(朝鮮上古民族史)’(동국문화사 1966)다. 책의 제목과는 생소하게 저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던 의학자로, 요즘 보기 드문 책인데다가 저자 친필 서명본에 받은 이가 일제강점기 역사학자로 한일신화 비교연구의 선구자이자 권위자로 유명한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 1902~1971)이니 눈길이 갈 수밖에….

1931년 일본이 만주국을 세웠을 때 ‘조선문제를 통하여 보는 만몽(滿蒙)문제’(1932)를 자비로 출판해서 일제의 만주 침략이나 대동아공영권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던 저자는 당시 ‘조선상고민족사연구의 절대 필요성과 그 중대성’을 절감하고 ‘조선민족 자체연구의 필요성에서 출발’하여 이후 30년의 공을 들여 완성한 책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조선민족 사천년사의 상반부의 이천년은 만주를 중심한 민족활동의 역사’이며, ‘그곳에서 비로소 민족의 유래를 간명(簡明)할 수 있고’, ‘그 문화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던 저자는 비록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8)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된 인물이었지만, 이 책을 완성한 후의 소감을 ‘과거 세계사 중에서 고립하여 매몰된 인류학적 보물을 발견한 그 감격과 그 경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저 이 책이 창씨개명 할 때 본래의 성만 파자(破字)해 ‘야마요시(山佳)’로 바꾸고 이름은 그대로 썼던 저자의 ‘소극적인 저항’에 대한 ‘적극적인 변명이자 핑계’가 아니었기를 바랄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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