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듯
태풍이 지나가듯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10.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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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잔디마당에 미꾸라지들이 뒹굴며 살려달라 아우성친다. 태풍 찬투로 연못물이 넘치면서 떠밀려 나온 것이다. 그들에게도 연못의 홍수는 재앙이었다. 남편이 양동이에 주워 담았다. 몇 놈은 힘이 빠져 겨우 움직이는데 더러는 꼬리치며 헤엄을 친다. 남편이 ‘추어탕 하면 맛있겠다’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흘겼다. 아내의 마음을 떠 보려 했다나…. 연못으로 되돌려 보낸다. 부디 모두 살아나길 바랐다.

찬투는 죄 없는 생명체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한 후 떠났다. 비바람의 뭇매를 맞은 비파나무는 옆으로 누웠다. 감나무도 떨어지는 감을 붙잡지 못했다. 다른 나무들도 요동치면서 잔가지와 잎들을 잃었다. 하수구로 가야 할 물이 넘쳐서 창고에까지 들어찼다. 

마당과 텃밭은 태풍과 사투를 벌이느라 밤새 전쟁터가 되었는데, 주인은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서 태풍이 지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비파나무를 바로 세우고 양수기로 창고의 물을 빼냈다. 창고를 보니 속상한 마음이 올라온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라 집을 통째로 옮기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든다. 

자연재해를 사람의 힘으로 막아내기란 쉽지 않다. 피해가 없도록 미리 대비한다고 하지만 항상 역부족이고 피해는 있게 마련이다. 태풍이 한바탕 난리를 치고 떠난 자리는 어지럽고 아프다. 사태 수습을 위해 다시 땀을 흘린다. 며칠이 지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고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태풍이 지나가듯 코로나도 인제 그만 지나갔으면 좋겠다. 코로나 사태는 인간을 할퀴는 태풍이다. 코로나 태풍이 강하고 질기게 세상을 강타하고 있으니 두려움과 우울감도 깊어진다. 방역수칙이라는 말도 이제는 지겨워지고 있다. 

추석 명절도 명절 같지가 않았다. 작년 추석에는 ‘내년에는 끝나겠지’라는 희망 속에서 조촐한 추석을 보냈는데, 올해도 여전히 달랑 가족끼리만 차례를 지내니 어딘가 허전한 명절이 되었다. 마음만은 보름달처럼 넉넉한 추석이라는 말이 위선처럼 들렸다. 

한가위 보름달은 우리 마음과는 달리 청명하고 환하게 세상을 비추었다. 코로나와 싸우는 우리를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이 잘못했으니 벌을 받는 것이라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달님에게 소원을 말했다. 제발 코로나 끝나게 해 달라고. 코로나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고 고통을 줄 만큼 주었으니 인류가 저지른 죄의 대가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는 나의 넋두리를 다 듣고도 여전히 밝은 미소뿐이다. 나도 말 없이 달과 눈을 맞추었다. 달빛 에너지가 내 맘을 열어 들어왔다. 달의 미소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태풍이 지나가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 때를 기다려라.’ 위로가 된다. 그때가 반드시 오리라는 희망 풍선을 크게 불어 높이 높이 띄워 보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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