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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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9.2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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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시인. 조엽문학회 회장)

한때 시 창작 수강을 한 젊은이로부터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보낸 책자를 받았다. 이제 시작이므로 초보자 수준임에도 글에 감도는 의욕이 화려해서 초장부터 기를 죽여서는 안 되기에 잘 썼다고 추어올려 주었다. 

상투적인 칭찬을 추진력으로 작용했는지 시집을 발간하면 문단에 일대 전환점이 온다며 믿고 자랑하기에 어이가 없었지만, 필자도 등단하자마자 기고만장했으니까 유유상종이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면 전국문단에서도 팔짱을 끼고 앉아도 되는 명성을 누린다고 절친에게 떠벌렸더니 등단하고 지천명에 요절하면 불쌍해서 잠시나마 헌화하면서 회자할지는 몰라도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놀랍게도 그 충고가 들어맞았다. 30년이 지났음에도 시가 시이지 명시는 경제력을 앞세운 문단 활동으로 저변을 확대한 공이 크고 사회적인 배경을 등에 업은 문학단체를 이끌 정도가 되어야 나타나는 신기루 영역임을 배웠다.

그 세월에 책을 29권이나 발간했지만 독자가 별로다. 시인끼리도 별로다. 이 별로라는 단어는 누구나 겪는 체험이기에 담담하게 받아드려야 한다. 남을 칭찬하면 자신의 작품 수준이 공연히 추락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색한 것을.

서울 사는 지인으로부터 제주도에 가서 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반긴다고 했더니, 반가울 거라며 들뜬 목소리를 내고는 일 년 정도 소식이 없기에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들뜬 표정으로 제주도에 집을 마련했다는 연락이 왔다. 막상 가보니까, 그 돈 주고 어떻게 그런 악지를 구했는지 한숨이 나오는 걸 참는데 당연히 대단하다는 칭찬을 기대하고 있다. 잘 못 샀다고 하면 실망이 클 것이고, 잘 샀다고 하면 나 역시도 속이는 놈이 되므로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런대로 괜찮은 곳이라고 말을 흘렸다. 눈치는 빨라서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후에 한 해를 살았던가, 헐값으로 되팔고 서울로 가더니만 의리는 끊어졌다. 집을 사겠다는 거창한 정보를 현지인인 나에게 왜 자문받지 않았는가? 이 질문이 이 글의 핵심이다. 그것은 바로 성취욕에 따른 안타까운 시행착오의 만용이다.

몇 개월이지만 문학을 배웠는데 뜻밖의 재능에 놀란 나머지 등단하고 시집까지 내서 시를 천 편이나 발표한 시인도 무색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저의가 바로 성취욕이다. 힘든 과정을 환희로 전환하는 결과를 예측하므로 주변의 충고는 스치는 바람결이다. 이미 내용이나 편집, 디자인까지 도와줄 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도 샛노란 병아리가 보무도 당당하게 출판사를 전전하면서 견적을 뽑고 있을 것이다. 책을 잘 만들어야 좋을 출판사이기에 얼마나 병아리를 귀여워하는지 눈에 선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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