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캄캄한 ‘블랙’이라도
세상이 캄캄한 ‘블랙’이라도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1.09.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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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집에 온 아들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화가 나더라도 술 마시지 마라. 장사가 안 된다고 왕창 술 마시고 기분을 풀면 잠시 후련할지 몰라도 곧 후회하기 십상이다.” 

대기업을 퇴사해 PC 관련 전문점을 차렸던 아들이 올해 추석에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혼자 귀성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들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보여주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화를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화를 내봤자 얻을 게 없고 더 수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참거나 혼자 삭히는 게 능사가 아닌 것도 틀림없다. 애써 태연한 척하다 보면 마음과 몸 모두 병드는 까닭이다. 

스트레스가 흰 머리와 탈모는 물론 불임까지 일으킨다고 하지 않은가. 뿐이랴. 실제 사람 좋기로 유명하던 이들이 갑자기 암으로 사망하는 일도 적지 않다. 

▲흔히 감정(感情)을 색(色)이나 소리로 표현한다. 대표적으로 우울한 마음을 블루(blue), 그리고 화가 치미는 분노를 레드(red)로 나타낸다. 또 레드 단계를 지나서 미래의 암담함을 표현할 때는 블랙(black)으로 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우울증인 이른 바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가 나오더니 최근에는 코로나 블루를 넘어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이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했다.

코로나 레드 또는 코로나 블랙은 의학적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의학계에선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한 데 따른 스트레스 과부하 등으로 인해 분노 또는 암담한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다.

특히 코로나 블랙은 생활 터전의 붕괴로 화병(火病)이 확산한 데 따른 결과물이라고 의료계는 추정한다.

하여튼 시간이 갈수록 미래가 캄캄하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제는 모두 익숙했던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어 걱정이다.

▲‘화병’은 ‘울화병’의 준말이다. 여기서 ‘울’(鬱)이란 것은 오랜 시간 쌓였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울감이나 분노 등의 감정이 오랜 시간 적절하게 분출되지 못 하고 쌓여 정서적, 신체적 문제를 함께 일으키는 질병이 바로 화병이다.

추석 직전에 10월에는 ‘위드 코로나’한다면서 한껏 기대하게 하더니 추석이 끝나자 확진자 3000명이 넘는 대유행 사태가 났다. 올해 내 ‘위드 코로나’는 물 건너갔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런 희망고문을 그동안 몇 번이나 겪었나. ‘화’가 도져서 화병이 날 수밖에 없게 됐다.

요즘 유행하는 화병의 증상을 보면 사는 게 재미없고 매사에 짜증이 난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고,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면서 몸이 화끈거린다.

의료계에서는 일상의 ‘성취욕’이 좌절되면서 빚어지는 욕구불만이 요즘 화병이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화병이 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 한 백수 젊은이나 자영업자뿐이 아니다.

누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했나. 폐업 점포들이 늘면서 꼬마 빌딩 주인들도 벼랑에 몰렸다. 빚내서 건물 대출이자 갚기에 헐떡이며 화병이 났다. 봉급이 재깍재깍 나오는 공무원만 빼고는 다들 화병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화를 내지 말자. 마음이 무너지면 몸이 함께 무너진다. ‘비누로 몸을 씻고 눈물로 마음을 씻는다’는 말이 있듯 힘들면 화를 내는 대신 가족과 함께 한바탕 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0여 년 전에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삶을 구성하고 단연코 나를 반짝이게 만드는, 영원히 반짝일 모래알들,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사람들과 살아가고 또 사랑을 할 것이다.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그래. 세상이 캄캄한 ‘블랙’이라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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