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황무지·하늘 맞닿은 고개…‘이상향의 도시’로 가는 길
거친 황무지·하늘 맞닿은 고개…‘이상향의 도시’로 가는 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9.2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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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북인도를 가다(9)
자동차로 넘을 수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개라는 탕그랑 패스(해발 5328m). 곳곳에 내걸린 타루초(불교 경전이 적힌 깃발)를 통해 우리 일행이 향하는 라다크 왕국의 레(Leh)가 불교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자동차로 넘을 수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개라는 탕그랑 패스(해발 5328m). 곳곳에 내걸린 타루초(불교 경전이 적힌 깃발)를 통해 우리 일행이 향하는 라다크 왕국의 레(Leh)가 불교 지역임을 알 수 있다.

■ 라다크 왕국의 레(Leh)
이번 북인도 여행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이 라다크 왕국의 레(Leh)입니다.

라다크 왕국 옛 수도 레는 오래전 지금은 고인이 된 친구 김수남이 쓴 ‘아시아의 하늘과 땅’이란 책을 통해 접하게 됐습니다.

라다크 어느 마을에서 새해를 맞아 얼굴에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라마죠기’라고 불리는 신으로 현신해 마을의 모든 사람의 집을 찾아 건강과 장수, 풍요를 빌어주는 ‘로사르’라는 설날 축제를 촬영한 사진을 그 책에서 보고 ‘와~’ 하고 감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신비롭고 강렬했던지…. 그때 봤던 그런 축제야 볼 수 없겠지만 언젠가 갈 수 있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지역으로 오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바로 그 라다크로 간다니 가슴이 무척 설렜습니다.  

인도의 라다크 왕국 레는 이 지구상의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샹그릴라 하면 동티벳에 있는 샹그릴라를 상상했었는데 인도와 네팔, 부탄 등 여러 지역에 ‘이상향의 고향’ 샹그릴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고산지대에서 잠을 잔 탓인지 아침을 거의 먹는 둥 마는 둥 출발하고서도 한참 동안 차 안이 조용합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자리 선택이 중요합니다. 어느 자리는 달리는 와중에도 촬영할 수 있지만 자리가 나쁘면 사진 한 장도 못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들 얼른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먼저 차에 타려고 눈치를 봅니다. 물론 자기만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게 미안해 돌아가면서 자리를 양보하기도 합니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한 여성은 멀미를 핑계로 처음부터 앞자리를 차지해 눈총을 받지만 ‘나 몰라라’하고 있습니다. 여행 때마다 꼭 한 사람씩 말썽을 부린다더니…. 

마날리에서 사르추를 거쳐 레로 가는 구간은 겨울 동안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어 여름(6~9월)에만 육로가 열립니다.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데 잠시 쉬었다 갔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없다며 마냥 달리고 또 달립니다.

우리 일행이 달리는 길은 ‘Leh Manali Highway’라는 히말라야 황무지 산을 돌고 돌아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고갯길로 중간에 5000m가 넘는 탕그랑 라(탕그랑 패스)를 넘어야 하는데 도로 사정에 따라 몇 시간이 걸릴지 몰라 서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어제 마날리에서 사르추로 올 때에도 산사태로 도로가 막혀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가는 길 역시 중간마다 공사가 진행 중이라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어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현장을 빠져나가야 레에 일찍 도착할 수 있고 길이 막히면 차 안에서 잠을 잘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한답니다.

탕그랑 패스 곳곳에 작은 돌을 쌓아 올린 탑들이 눈에 띈다.
탕그랑 패스 곳곳에 작은 돌을 쌓아 올린 탑들이 눈에 띈다.

■ 로탕 패스·탕그랑 패스 넘자 드디어… 
차는 바쁘게 출발해 분지 형태 지형을 달리는데 주변이 장관입니다. 덜컹거리는 차 속에서 유리창에 부딪히면서도 촬영하려 했지만 괜한 짓인 듯싶어서 눈 속에만 담아가고 있습니다.

벌판이 끝나자 가파른 산악지역이 시작됐고 우려했던 대로 공사 차량이 줄지어 엉금엉금 기듯이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저 속도로 가다간 오늘 중으로 이 산을 넘어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며 한참을 지켜보는데 공사 차량들이 잠깐 멈춘 사이 잽싸게 빠져나가 공사 중인 도로를 어렵게 지나가 봅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길은 더 험해지고 오가는 차들로 뒤엉켰는데 한 차가 깊게 팬 웅덩이에 빠져 꼼짝도 할 수 없어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보니 고산 야생화가 만개해 이때다 싶어 차에서 내리려 했더니 “언제 차가 움직일지 모르니 내릴 수 없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틈만 보이면 무작정 끼어들고 길이 트이면 달려가야 해서 내려서 사진을 찍겠다는 말은 꺼낼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갔는지 험한 산을 넘은 뒤 내려서 올려다보니 엄청나게 높은 산을 넘어왔는데 바로 해발 5328m의 탕그랑 패스와 로탕 패스를 넘어온 것이랍니다. 길도 험한 데다 도로 공사 지역을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다들 기뻐해서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는 푸념조차 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탕그랑 패스에서 몇 장 찍은 게 있어 마음을 달랬습니다.    

험한 산길을 빠져나와 좀 편한 길로 가는가 했으나 다시 산길을 오르고 협곡을 돌고 또 돌아갑니다. ‘라다크로 가는 길이 이리도 힘이 드는가’ 생각할 무렵 한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또 검문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외국 입국 시 쓰는 서식과 같은 서류를 작성하고 거기다가 여권을 들고 사진까지 찍으라는 겁니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산 하나 넘으면 파키스탄이라서 더욱 검문이 심한데 앞으로 서너 곳에서 검문을 받아야 레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산을 넘으면서 보니 길가에 오색의 타루초(불교 경전이 적힌 깃발)가 내걸린 것으로 봐서 라다크가 멀지 않은 듯합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히말라야 황무지를 지나 ‘시체들의 고개’라는 로탕 패스, 세계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두 번째로 높은 탕그랑 고개를 넘자 드디어 멀리 라다크의 수도 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레로 향하는 강 주변은 푸른 숲과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 등 지금껏 지나온 지역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레로 향하는 강 주변은 푸른 숲과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 등 지금껏 지나온 지역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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