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vs 정치 
우유 vs 정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9.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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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홀로그램콘텐츠산업협회 이사장·논설위원

1987년 ‘진짜 우유’를 표방하며 후발 업체로 혜성처럼 등장한 P유업은 저온살균(pasteurization)이라는 차별화로 ‘저온살균 우유는 프리미엄 우유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 중반까지 눈부신 국가 경제 성장과 더불어 프리미엄 소비시장의 성장으로 이 업체의 프리미엄 차별화 전략은 성공하였다.

이후 대남 전단지 같은 키치(Kitsch)풍 광고와 식음료 광고로는 부적절해 보이는 ‘쾌변’이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광고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하였던가? 1995년 ‘일반우유는 고름우유다’라는 비방 광고로 기존 우유와 차별화하려 했던 업체는 기존 유가공업체들의 강한 반발로 인해 ‘P유업 vs 기존 유가공업체’의 구도로 법정공방을 하게 된다.

일간지의 신문 1면에는 연이은 상호비방광고가 이어지고 이로 인해 우유 시장 전체가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된다. 진실 여부를 떠나, 소비자들은 시판 우유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며 당시 우유 판매량이 50% 이상 격감한다. 

결국 1995년 11월 농림수산부와 보건복지부의 중재 하에 ‘상호비방광고중지’를 협의하였고 누구의 승리도 아닌 이 소모적 싸움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 사건은 국내 비방 광고의 효시가 되며 기업 잔혹사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 상처는 P유업과 기존 유가공업계 모두에게 깊게 남게 되었다. 1998년 연이은 악재와 IMF로 P유업은 부도 위기를 맞았고 그 여파로 앙숙 같았던 기존 유가공업체 중 한 곳에 매각되며 아쉽게도 그 혜성 같았던 빛을 잃어버렸다.

2022년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근 각 당의 후보들이 상대 당 혹은 경선 경쟁자에 벌이는 네거티브 전략이 앞서 이야기 한 ‘고름우유 파동이 부른 소비자 불신과 우유 시장 침체의 사례’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승자독식 구조의 정치 생리상 후보자 간 상호 비방은 과거 선거전에서도 늘 있어 왔다. 하지만 작금의 후보자 간 네거티브 공방은 마치 서로 한평생 다시 보지 않을 듯 막장 드라마보다도 더한 독설과 비방이 오고 간다. 이래서는 선거 후 여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자극적인 소재는 관심을 끌고 주목받기 좋다. 하지만 네거티브가 강해질수록 국민들은 정치를 불신하고 외면하게 될 것이다.  

성숙한 유권자들은 국민 검증을 빙자한 자극적인 네거티브 전략보다 후보자의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정치 공약을 더 중요하게 평가할 것이며 일희일비하며 요동치는 여론조사보다는 후보자가 그간 걸어온 행적과 도덕성, 그리고 인성을 보고 선택할 것이다. 

사실 이 고름우유 파동이 준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다. 소비자에게 ‘하얀 것은 모두 우유다’라는 생각에서 우유의 등급과 우유 내 체세포 수를 살펴보는 성숙한 소비문화를 만든 계기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네거티브가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는 않다. 이로 인해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의 기준이 매우 엄격해져 과거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관행들이 지금은 큰 이슈가 되고 있으며 정치권이 서로 담합하여 국민은 모르게 밀실정치를 하는 것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검증이고 남이 하면 네거티브라는 식의 후보자 간 공방이 네거티브가 아닌 국민 검증이 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사실에 입각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자기검열을 거쳐야 한다. 

시대는 변했고 국민들은 현명해졌다. 지금은 정치권이 하루빨리 구태의연한 관행에서 벗어나 시대가 요구하는 성숙한 프리미엄 정치문화를 싹 틔워야 할 때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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