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로 이어진 최정숙 선생의 교육정신 '결실' 맺다
후대로 이어진 최정숙 선생의 교육정신 '결실' 맺다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1.09.17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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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주&제주인 기획 (2)
도민 후원 힘입어 비영리 단체 설립
아프리카 브룬디 교육환경 개선
최정숙여고 건립...여성인재 51명 배출
내전 휩쓴 무쿤쿠 초등학교도 복구
한마음 한뜻으로 일군 '나눔의 과실'

제주에서 교육받은 여성들로부터 시작된 나눔의 힘이 지구 반대편에서 기적을 낳았다.

제주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교육자였던 고(故) 최정숙 전 제주도교육감의 교육정신이 후대로 고스란히 이어져 아프리카 브룬디공화국의 땅에 뿌리내린 것이다.

도민 후원의 힘으로 브룬디에 세워진 ‘최정숙여자고등학교’는 올해 첫 졸업생 51명을 배출, 졸업생 전원이 대학자격시험을 통과해 브룬디 최고 명문여고의 명성을 과시했다.

내전으로 파괴된 무쿤쿠 초등학교도 최정숙초등학교로 복구됐다.

본지는 한가위를 맞아 아프리카 브룬디 최정숙여고‧최정숙초를 설립, 후원하며 훈훈한 소식을 전하는 도내 비영리단체 최정숙을기리는모임(회장 현은자)을 만났다.

제주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교육자였던 최정숙 전 제주도교육감의 교육정신을 이어 받은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은 도민 후원에 힘 입어 2018년 아프리카 브룬디에 최정숙여자고등학교를 건립했다. 사진은 준공식 당시 지역 주민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최기모 제공.

“과거 저희가 제주에서 여성 교육의 혜택을 받았듯 지구 반대편에서 여성 인재를 길러내고자 했죠.”

도내 비영리단체 최정숙을기리는모임은 2014년 아프리카에 여학교를 세우자는 목표로 의기투합한 신성여고 출신 선후배 6명으로 결성된 모임 샛별드리에서 시작돼 도민 후원으로 2018년 학교를 준공하며 완성됐다.

현은자 회장(신성여고 15기) 등 샛별드리는 최정숙 선생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지만 교육감 은퇴 후 신성여고 교정 뒤 수녀원 마당을 지나던 그의 생존 당시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세대다.

독립운동가, 의사, 교육자 등 최정숙 선생의 겉모습은 많이 알지만 그의 속에 담긴 생활과 삶의 정신이 뭔지 보고 싶었다는 이들은 2014년 아프리카에서 여학교를 세우자는 꿈으로 샛별드리를 결성했다.

2014년부터 이들은 5년에 걸쳐 한 사람 당 5000만원씩을 사회에 헌납하자는 목표로 6개월을 주기로 만날 때마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돈을 모았다.

어떤 이는 100만원을 가져왔고, 어떤 이는 500만원을 가져왔다.

가족 몰래 돈을 몹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3년만에 1억원이 모였다.

이들은 2017년 제주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의 마이클 리어던 조셉 신부를 찾아갔고, 신부는 이들을 자립전문 국제개발협력 NGO 한국희망재단에 연결시켜줬다.

샛별드리는 같은 해 학교 설립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해당 모임과는 별개로 비영리 단체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을 설립했다.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과 한국희망재단은 브룬디와의 학교 설립 타진에 성공했다.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이 기숙사를 강조한 이유는 많은 브룬디 여성들이 15세 이후 가정 내 생계 문제로 조혼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장거리 등하교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학교 설립에 있어 브룬디 당국은 661m²(2만평)의 학교부지 제공과 기숙사 건립을 맡았다.

학교 건립에는 샛별드리가 1억5500만원을 마련, 남은 금액은 모든 학교 설립권한을 도민 후원자가 포함된 최정숙을기리는모임에 이전하는 조건으로 대도민 모금에 나섰다.

후원에는 최정숙 선생의 신성여고 교장 시절 가르침을 받던 신성여고 10기 이전 기수까지 팔을 걷어 붙였고, 이외 제자들, 교육계 인사, 교직원, 타학교 여성 후배 등이 돈을 모아 최종적으로는 도민 약 300여 명이 후원자가 돼 최정숙여고 설립에 동참했다.

모금 활동을 진행하며 후원자들로부터 최정숙 선생이 그간 제주 제자들이 가난으로 공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돕는 등 ‘조용한’ 선행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는 게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의 설명이다.

이렇게 제주에서 총 2억6500만원이 모여 건립된 브룬디 최정숙여고를 짓는 전 과정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했다.

한국희망재단이 공사에 착공할 때 일감을 얻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공사 짓기에 나섰고, 마을 사람들끼리 하루는 돈을 안 받고 공사하는 ‘봉사의 날’을 자체적으로 지정하는 등 마을은 학교 건립에 웃음 꽃을 피웠다.

2018년 준공식에 최정숙을기리는모임이 브룬디를 찾았고, 이때 제주 교육현장의 학생들이 쓴 편지와 미술 전공생들의 초상화, 학부모 선물 등이 이들과 함께했다.

마을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브룬디 현장을 다녀온 이들은 나눔이 주는 큰 기쁨을 느꼈다.

최정숙여고 건립에 이어 2019년 최정숙초등학교가 준공됐다.

내전으로 파괴된 무쿤쿠 초등학교를 재건하는 작업이었다. 후원에는 샛별드리 중 회원 3명과 최정숙여고 준공식에 참석했던 도민 후원자들이 나섰다.

또 이들의 지인이 동참해 총 후원자 13명이 나서 최정숙초등학교 건립에 참여했다.

최정숙여고는 여성 인재를 기르는 학교로, 남녀공학인 최정숙초는 보편적 교육을 목표로 브룬디 의무교육과정인 초‧중등 교육과정(9년제)으로 운영된다.

올해 최정숙여고에서 첫 졸업생이 배출됐다. 사진은 졸업식 사진. 사진=최기모 제공.

브룬디에 뿌리내린 교육의 힘은 컸다. 현재 최정숙여고는 무진다마을을 중심으로 부반자, 부줌부라, 치비토케, 카옌자 등 4개 지역에서 우수 여성인재들이 입학해 공부하고 있다.

올해 3학년 진급자 66명 중 첫 졸업생 51명(15명이 유급)이 배출돼 졸업생 전원이 대학 자격 시험에 합격하는 영예를 안았다.

최정숙을기리는 모임은 이중 3명의 학생에게 도민과 1 대 1 결연으로 4년 장학금을 제공한다.

올해 장학금 수여자들은 각각 공중 보건, 교육, 의대 진학에 도전한다. 또 다른 두 명은 제주로 기술교육 연수에 들어갔다.

열기에 힘입어 올해 신입생 경쟁률은 뜨거웠다. 당초 100명을 선발할 예정이었지만 지원자가 대거 몰리며 120명의 신입생이 선발됐다.

지역사회 내 여성 교육 인식에도 변화가 일었다. 최정숙여고에서 올해 학생 2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복수 응답 가능)를 한 결과 학생들은 미래 진로로 71.7%가 ‘대학 진학’에 최다 응답했고, 부모 또한 향후 딸의 진로로 ‘대학 진학(65.8%)’을 가장 많이 바랐다. 결혼은 최후순위였다.

마을 간 협력사업도 눈에 띈다. 최정숙여고 설립 때 가장 큰 고민은 재정자립 문제였다. 브룬디 학생들은 가난하고 국가 지원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에 이들은 학교교정과 마을에 ‘학교농장사업’을 계획해 1차년도에 부화장과 양계장, 사료공장을, 2차년도에 팜오일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도민 후원으로 브룬디에 학교가 세워진 건 우리 힘으로 된 게 아닌 어떠한 힘이 끌어준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한 마음이 됐다는 게 중요하죠. 최정숙 선생님이 뒤에서 도와주고 있구나. 허락해주고, 끌어주시는 구나 싶었죠.”

향후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은 학교 내 코로나19 방역 물품 지원, 최정숙여고‧최정숙초 활성화 등에 주력한다.

현재 최정숙을기리는모임 후원자는 700여 명이며 후원금 95%는 직접 사업에 쓰이고, 5%는 공과금에 쓰인다.

임원 전원이 무보수 봉사로 활동한다. 도민 후원은 최정숙을기리는모임 홈페이지(www.최기모.com)를 통하면 된다.

내전으로 파괴됐던 무쿤쿠 초등학교가 2019년 최정숙초등학교로 준공됐다. 사진=최기모 제공.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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