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고갯길 넘은 여행자들이 하루 쉬어 가는 황무지
위험천만 고갯길 넘은 여행자들이 하루 쉬어 가는 황무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9.0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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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북인도를 가다(8)
‘시체들의 고개’라는 뜻의 로탕 패스를 지나 사르추로 향하는 길. 황량함과 거대함이 압도적으로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시체들의 고개’라는 뜻의 로탕 패스를 지나 사르추로 향하는 길. 황량함과 거대함이 압도적으로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 ‘시체들의 고개’ 넘어 사르추로…
북인도에 오기 전 준비물을 챙길 때 고산증 예방약을 꼭 가져오라는 당부에도 ‘얼마나 높은 곳을 간다고 약까지 가져갈 필요가 있을까?’하고 그냥 길을 나섰습니다.

마날리에서 출발하기 전 길잡이가 “오늘 저녁 잠자는 곳이 해발 4000m가 넘는 곳이니 꼭 고산증 예방약을 먹어야 합니다. 약을 안 가져오신 분은 말씀하세요. 앞으로 가는 코스는 고산 지역이라 꼭 약을 먹어야 고산병을 이길 수 있고 또 행동도 천천히 해야 합니다”라고 당부합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일행에게 “약을 가져왔느냐”고 물었더 다들 준비하고 왔답니다. ‘꼭 필요할까’하고 망설이다 가이드한테 부탁하자 약 두 알을 주며 잘 보관하랍니다.

마날리를 벗어나 점점 높은 지대로 올라가자 주변 환경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히말라야 황무지 산을 돌고 돌아 오르고 내리는 위험천만한 고갯길, 사진을 찍는 나에게는 좋은 풍경이나 차량 안을 둘러보니 다른 일행들은 겁이 났는지 파래진 얼굴로 손잡이를 힘껏 쥐고 있습니다.

굽이굽이 험난한 산길을 달리는 것도 무서운 데 차창 밖을 내다본다는 건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위험한 고비를 지날 때면 오래전 사고로 전복된 차량이 당시 참상을 그대로 보여 주듯이 남아있어 끔찍해 보입니다. 이런 길은 오를 때는 잘 모르지만 내리막길, 그것도 험준한 낭떠러지가 눈앞에 펼쳐지면 불안한 생각이 밀려와 심장이 떨리기도 합니다.

마날리에서 출발해 히말라야 고원지대를 지나고 몇 개의 협곡과 산을 넘어 작은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검문을 받게 됐습니다. 이 지역은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크고 작은 분쟁이 자주 일어날 뿐 아니라 가끔 파키스탄에서 넘어온 군인들이 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잦아 검문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랍니다.

국경 상황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다지만 마을을 지날 때마다 검문을 받다 보니 슬슬 짜증이 났는지 몇몇 사람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구석에 앉아 있던 나이 많은 김 선생이 “우리나라도 간첩 사건이 터지면 검문이 심하지 않았습니까. 이곳 상황을 이해해야지 별수 있나요”라고 뜻있는 한마디를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도 얼마나 심했는데…. 맞는 말입니다.

마날리에서부터 10시간 넘게 차로 달려 해발 3980m의 로탕 패스(Rohtang Pass)를 넘어서자 황량한 황무지가 넓게 펼쳐집니다. 로탕 패스는 ‘시체들의 고개’라는 뜻이라는데 그 이름만으로도 섬뜩한 도로입니다. 하필이면 하룻밤 묵을 숙소가 시체들의 고개 너머에 있는 것인지…. 차라리 로탕 패스의 뜻을 몰랐다면 그런가 했겠지만 막상 알고 나니 여성 일행들이 좀 찜찜해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험준한 길이라지만 쉴 새 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시달리다 보면 졸음이 쏟아지기도 하는데 우리 일행들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한순간이라도 놓칠세라 눈에 불을 켜고 있어 위험한 지역에 대한 감상도 크게 없는 듯합니다.

사르추에자 도착하자 허허벌판에 조성된 텐트촌이 나타났다.
사르추에 도착하자 허허벌판에 조성된 텐트촌이 나타났다.

■ “고산증약 꼭 먹어라”
로탕 패스를 넘어 숙소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자 황량함과 거대함이 압도적으로 밀려오는 고산지대 특유의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이 일대는 그림 같은 야생화 군락지라는데 ‘도로가 막혀 늦었다’며 얼마나 바쁘게 달리는지 야생화 군락지는커녕 한 송이 꽃도 볼 수 없습니다.

가도 가도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벌판, 날이 어두워지면서 기온이 뚝 떨어질 무렵 오늘 숙박지인 사르추(Sarchu)에 도착했습니다. 넓은 벌판의 텐트촌인데 고도가 높아서인지 차에서 내리자 몇몇 사람이 두통을 호소합니다. 길잡이는 “빨리 짐을 가지고 텐트로 가서 고산증약을 먹어라. 그리고 천천히 다녀야지 급히 움직이면 큰일 난다”고 당부합니다.

깊은 히말라야의 품속에서 별빛과 함께 보내는, 실로 오랜만에 별 밤의 정취를 느껴 볼까 했지만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와 별을 촬영하는 건 어려울 듯해 내일 일정을 위해 좀 쉬기로 했습니다.

술은 한 잔도 안 된다고 강하게 주의받았음에도 ‘여기까지 왔는데 기념으로 딱 한 잔만 하자’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제주에서 멀고 먼 북인도까지 들고 간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지나온 길을 떠올려봤습니다. 험한 길이지만 사이사이에 펼쳐진 히말라야 산맥은 장관이었습니다. 차가 너무 급하게 달려 제대로 촬영할 수 없었던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일행들 모두 고산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알약을 먹고 있자 아침에 받아 챙겼던 약이 생각나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그냥 잠을 청했는데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슬리핑백 안에 있는 겁니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가보니 몇 사람이 야생화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참 대단합니다. 길잡이는 오늘 코스가 이번 여행 중 가장 위험하고 힘든 지역으로 8시간 동안 험난한 고갯길이 이어지니 얼른 길을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서두릅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현지 주민들이 탄 차량이 험준한 산길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다.
현지 주민들이 탄 차량이 험준한 산길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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