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나랏말의 운율만을 고르던 ‘영랑’의 시집
숨어서 나랏말의 운율만을 고르던 ‘영랑’의 시집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9.09 1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

영랑 김윤식 단 두 권의 시집 중 하나
자선 시 60편, 서정주·이헌구 글 수록
“소박하고도 면란한 언어미 여운 담뿍”
독립투사이자 저항시인…과작 아쉬워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 표지.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 표지.

헌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장서를 정리하려는 분들의 전화를 받게 된다. 십중팔구는 이사 등을 하기 위해 집안 정리를 하거나 자녀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이제는 필요 없어진 책들을 처리하는 경우다. 이렇게 입수되는 책들은 우리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들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공간 문제 때문에 아쉽지만 바로 폐지 처리하는 일도 있다.

때로는 통화 중에 옛날 선장본 같은 아주 오래된 책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보시던 묵은 책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오래된 고서(古書)는 아니지만 요즘 나오는 책들과는 사뭇 달라서 언뜻 손이 가지 않는 책이라…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보기 드문 책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책을 좋고 나쁜 것으로 나눌 일은 아니지만, 생업(生業)이 헌책방지기이니 아무래도 보기 드문 책들에게 눈길이 더 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직업적인 본능이다.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 표지.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 표지.

그렇게 입수된 시커먼 책들을 정리하자면 케케묵은 먼지에 때로는 곰팡이까지 피었으니 그 놈의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마스크와 장갑은 필수지만 뒤적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대부분은 그저 그냥 낡은 책더미인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눈에 띄는 책들이 홀연히 나타나기 마련이라 재미있는 책을 찾는 눈빛은 갈수록 영롱해질 수 밖에…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에 수록된 영랑 김윤식(金允植 1903~1950) 사진.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에 수록된 영랑 김윤식(金允植 1903~1950) 사진.

얼마 전에도 그렇게 요즘엔 보기 드문 책 한 권을 찾았기에 오늘은 그 책을 소개해 보련다. 바로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으로, 전 국민의 애송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대표되는 영랑 김윤식(金允植 1903~1950)의 시집이다. 영랑의 지기(知己)였던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이 편집한 첫 시집인 ‘영랑시집’(시문학사 1935)과 더불어 세상에 나온 단 두 권의 시집 가운데 하나다.

1949년 초판이 발간된 이 책은 영랑이 세상을 떠난 후 극적으로 시집의 지형(紙型)을 되찾아 출판한 재판본(再版本)으로, 영랑의 주옥같은 자선(自選) 시 60편과 함께 서정주의 발사(跋詞)와 이헌구의 ‘재판(再版)의 서(序)에 대(代)하여’가 수록되었다.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 목차.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 목차.

1930년 정지용·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창간 동인으로 참여했던 영랑의 시는 ‘우리의 향(香)맑은 옥돌과도 같으며 소박하고도 면란(緬瀾)한 언어미(言語美)의 여운(麗韻)이 담뿍 풍겨지는’(이헌구) ‘일제 삼십여 년간의 완갖 유명(有名)을 회피하고 숨어서 이 나랏말의 운율(韻律)만을 고르고 있든 이의 선택된 정서(情緖)’(서정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귀향해서 칩거(蟄居)하면서 ‘잘해야 한해에 한 두편밖에는 산출(産出)하지 않었든 그의 시(詩)에 대한 고도의 존숭(尊崇)때문에 온 과작(寡作)과 겸허의 태도’(서정주)로 인해 당시의 여러 문인들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영랑이었다.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에 수록된 ‘모란이 피기까지는’ 부분.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에 수록된 ‘모란이 피기까지는’ 부분.

세련되고 서정적인 시로 유명한 영랑이지만 휘문의숙 3학년 재학 시절에는 3·1운동에 참여해서 6개월여의 옥고를 치룬 독립투사였고, 최승희와의 열애가 끝내 이별로 막을 내렸을 때는 자살을 기도할 만큼 열정적인 면도 있었으며, 일제의 회유와 협박이 거세지자 절필을 선언한 후에는 해방될 때까지 일본어로는 단 한 줄도 적지 않았던 저항시인이었다.

영랑(永郞), 그의 단명(短命)과 과작(寡作)이 그저 아쉬울 밖에…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 판권.
‘영랑시선(永郞詩選)’(正音社 1956) 판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