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9.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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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칼럼리스트

‘라떼는 말이야.’ 꼰대질의 대명사가 된 이 단어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어의가 바뀌어 문화적 코드가 돼버린 ‘밈’으로 자리 잡은 것은 좋은데 현실 부적응과 부정적 의미가 떠오르고 그 세대에 속한 장본인으로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사회 정의와 공정함을 추구하던 세대로 자부심을 가졌던 586이 왜 비판의 대상이 됐을까. 무용담처럼 이야기되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 섰던 이들이 왜 라떼를 일삼는 꼰대로 여겨질까. 단지 나이 때문에? 어느덧 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큰 세대가 됐으니 할 말이 유독 많아서일까. 어쩌면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이를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후 386세대는 이슈는 달라도 시대마다 의제를 제안하고 이를 관철하는 게 자신들의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하게 된 측면이 강하다. 

권력과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586은 그렇다고 스스로의 사회적 역할을 축소하고 은퇴의 길을 밟을까. 공교롭게도 이들의 영향력과 사회 참여 의지는 약화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그 의지는 계속 유지될 것 같다.

나는 586세대가 사회적 관심과 집착의 시야를 자연스럽게 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관심의 영역을 자신의 미래로 돌리기를 바란다. 청년세대의 문제는 젊은 층에게 맡기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면 좋겠다. 우리의 윗세대들은 정년퇴직을 하거나 60세가 넘으면 손쉽게 은퇴하는 삶을 선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은둔형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였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80세는 물론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인생의 길이 열리는 중이다. 정작 자신들이 앞으로 살아갈 30, 4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에 대해서 다들 불안해하면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전 세대의 노후 준비와 삶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현재의 노인 정책은 삶의 질을 고려한 내용은 아니다. 노인 정책은 사실 살아남은 노인들을 관리하는 생존형 정책의 범위를 넘지는 못 한다. 사회보장의 필요성과 범위, 공동체 내에서의 노인 케어, 노인 스스로를 케어하는 노-노 케어, 미래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방안, 노인의 사회적 역할 등 찾아야 할 다양한 길이 놓여있다.

주변을 둘러보자. 많은 노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준비 없이 연장된 수명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부모님의 나이가 되려면 물론 살아남는다는 전제 하에서 30여 년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나 그 삶의 길이 그려지지 않는다. 노년의 삶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삶의 시야를 급격하게 전환해야 한다. 20대를 보냈던 1980년대가 우리 사회의 방향을 고민하던 시기였다면 이제는 그 에너지를 노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자신과 사회를 위해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 현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역사의 뒤안길로 은퇴하는 길은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 역할을 자신들의 미래, 생존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노년의 삶을 어떻게 재정립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개척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했던 역할을 여기에 집중해야만 한다. 그게 가장 잘 해왔던 일이기도 하지 않은가.

20대에 그랬듯 가르쳐주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노인 세대가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며 잘 늙어갈지를 찾고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을 열어주면 어떨까. 그래야 ‘라떼는 말이야’가 비아냥이 아닌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밈’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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